▲ 박상증 목사가 박근혜 후보 캠프에 참여한다는 보도가 나왔다. 에큐메니컬 운동과 시민운동의 원로가 보수 여당에 참여한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술렁였다. 박 목사는 어떤 생각으로 박 후보 캠프와 접촉했을까. 지난 11월 6일 박 목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
박상증 목사는 박근혜 후보 캠프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밖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북방한계선(NLL)의혹진상규명범국민추진위원회'를 만들고 지난 11월 4일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에게 NLL을 둘러싼 의혹을 해명하라고 요구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지난 2007년 북한에서 정상회담을 할 때 NLL을 거론했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노무현 대통령 정권에서 일한 문재인 후보의 안보 의식을 검증하자는 주장이 나오던 시점이었다. 박 목사가 의도가 무엇이었든지 박근혜 후보 진영의 외각에서 박 후보를 지원하고 있는 셈이다.
박상증 목사는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간사, 세계교회협의회 간사, 아시아기독교협의회 총무,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기사연) 원장을 역임하며 에큐메니칼 운동을 펼쳤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시민운동에 뛰어들어 10년간 참여연대 공동대표를 맡았고, 아름다운재단 1대 이사장을 지냈다. 이처럼 진보 진영에서 꾸준히 활동한 박 목사가 박근혜 후보에 돕는 듯한 활동을 하자 함께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이들이나 그의 활동을 지켜봐왔던 사람들은 적지 않게 놀라고 있다.
외국에서 유신 정권과 맞서 싸우고, 한때 보수적인 목사들로부터 KGB(옛 소련 안보 기관)의 돈을 받는다는 말까지 들었던 박상증 목사가 이제는 보수 진영으로 돌아선 걸까. NLL 의혹 규명 기자회견을 한 지 사흘 뒤인 11월 7일, 박 목사 자택을 찾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상증 목사는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기보다는 야권 후보를 검증하길 원한다. 아니, 대선과 상관없이 진보 진영에 반론을 제기하고 토론하고 싶은 게 그의 속내다. 박 목사는 수십 년 진보 진영에서 지켜본 진보 인사와 운동권의 모습에 실망했다면서 과격한 표현까지 사용하며 진보 진영을 비판했다.
박상증 목사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 캠프에서 국민대통합위원장직을 제안했다고 들었다. 일부 언론은 사실상 박상증 목사가 위원장을 맡은 것처럼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박 목사와) 독대하고 영입을 확정한 상태"라는 관계자 말까지 전했다.
황우여 새누리당 중앙선거대책위원장이 다니는 충무교회 원로목사가 내 후배다. 후배 부탁으로 황 의원을 만났고, 황 의원이 국민대통합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했다.
나는 2000년대 초에 희망포럼이라는 단체에서 노·사·정 대통합 운동을 했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그 뒤로도 국민 통합은 내 관심사였는데, 대선 후보 중 유일하게 박근혜 후보가 여기에 관심을 보였다. 박 후보가 국민 대통합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게 신선했다. 황 의원을 통해 이야기를 들으니 박 후보 주장에 진정성도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국민 대통합 운동은 한 정당이나 정부가 추진할 일이 아니다. 자신이 소속한 정당도 통합을 이루지 못하면서 국가 통합을 할 수 있나. 이해찬 의원이 총리였을 때 나를 찾아와 국민 통합 운동을 하겠다고 했을 때도 "국민 통합 운동은 정부도 파트너로 참여해야 한다. 정부가 주도하면 안 된다"고 했다. 이 의원은 그때 화를 내며 돌아갔다. 황우여 의원에게도 정당을 먼저 통합하라고 조언했다. 박 후보 캠프에 들어가면 박 후보 표를 한 표라도 더 얻어 주어야 한다는 점도 부담됐다. 관심은 있었지만 하지 않기로 했다. (박 후보 캠프 참여는) 끝난 이야기다.
- 에큐메니컬 운동을 오래 했고, 진보 세력과 가까운 시민 단체에서 일했기 때문에 박근혜 후보 캠프 영입설에 놀라는 사람들이 많았다. 예전 행보와 반대로 가는 느낌이다.
난리 났었다. 그런데 시민운동을 민주통합당하고만 해야 하나. 대화하는 게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나라는 아직 이런 면에서 성숙하지 못하다. 자신이 지지하지 않는 정당은 원수라고 생각한다.
▲ 박상증 목사는 진보 진영이 진영 논리에 매몰됐다고 강하게 비판하면서도 애정을 보였다. 특히 참여연대가 순수한 시민 단체로 남아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
박정희 대통령 시대는 흘러갔고, 박 대통령을 상대로 투쟁했던 사람들도 그 시절을 다시 객관적으로 보고 있다. 나도 한발 떨어져서 보면서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됐다. 김지하 시인도 그렇지 않나(김 시인은 11월 5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 역사는 절대적이지 않고 상대적이다. 군사독재는 나쁘지만, 무엇을 이루었는지도 봐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나라 경제를 살리는 노력은 하지 않았나. 게다가 유신 정권 시절 박근혜 후보는 어렸다. 박 후보를 유신과 연결하는 것은 정치 전략이다.
- 박근혜 후보에게 유신 정권 당시에 벌어진 일을 책임지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시대를 바라보고 평가하는 박 후보의 역사의식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역사의식을 말하자면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인하는 쪽 문제가 더 심각하다. 내가 서울대 예과를 다닐 때 마르크스주의가 대학을 점령하고 있었다. 선배와 동료가 마르크스주의를 가르치면서 단체 행동을 이끌었고, 단체 행동에 따르지 않으면 반동으로 취급했다. 1948년 남한이 총선거를 치르고 나서 북한이 선거를 치를 때, 선배들이 비밀투표로 북한 선거에 동참하자고 했다. 나는 다른 운동에는 참여하겠지만, 비밀투표는 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이 일로 왕따가 됐고, 덕분에 서양역사학과 연구실도 딱 한 번 들어갈 수 있었다. 그만큼 사상이 경직되어 있었다.
올해 통합진보당 사태를 보면서 서울대에서 겪은 일이 떠올랐다. 진보 진영은 내가 서울대에서 겪었던 선배들과 비교해도 사상적으로 하나도 진화하지 않았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은 비판하면서 북한의 3대 세습에 침묵하는 것은 문제다. 소위 종북파라 불리는 사람들은 깊이 없는 사상으로 50년 전 세력을 추종하면서 그 시절 행태에 끌려가고 있다.
- NLL 의혹을 해명하라고 요구한 것도 경직된 진보 진영의 태도에 문제를 제기하기 위해서인가.
2007년 당시 남북 정상이 나눈 대화를 모두 공개하라는 요구가 무리라는 건 알고 있다. 그렇지만 NLL은 북한과 상의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이 침범해도 된다는 논리는 문제가 있다. 북한은 NLL을 정한 뒤 20년 동안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합의하지 않은 경계선이란 이유만으로 북한이 우리가 현재 사는 곳을 포격한다면 방어해야 한다. 북한의 도발까지 정당하다고 보면 곤란하다.
한국이 유신 정권 아래 있던 시절 세계교회협의회에서 일하면서 민주화 운동을 했다. 그때 같이 운동했던 사람들 가운데는 안기부에서 보낸 사람부터 북한에서 보낸 공작원들까지 있었는데, 그때 활동했던 북한 공작원들이 노무현 정권 시절 열린 6·15 기념행사에 다 참석했다. 나는 북한 공작원을 서울에서 보게 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이런 면에서 노무현 정권을 신뢰하지 못한다. 대선 전에 노무현 정권을 신랄하게 검증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NLL은 올해 대선의 주요 이슈가 되어야 한다. NLL 의혹 규명 운동을 꾸준히 펼치겠다.
- 진보 진영에 속한 많은 사람이 군사정권 아래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면 빨갱이로 몰리는 등 혹독한 사상 검열을 당했다. 북한 문제에 침묵하는 태도는 고통스러운 경험이 낳은 일종의 방어기제 아닐까.
▲ 박상증 목사는 노무현 정권의 안보 의식을 신뢰할 수 없다며, 이번 대선에서 노무현 정권을 신랄하게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밖에서 계속 문제를 제기할 계획이다. ⓒ뉴스앤조이 김은실 |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 있으면서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과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접촉했고,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뒤에 북한을 방문했다. 2000년에 만난 북한은 1980년대 만난 북한과 다르지 않았다.
2000년 방북 당시, 국가 승인을 받아 인쇄소를 운영하면서 수익이 나면 선교 자금으로 활용하는 중국 교회 모델을 적용하는 게 어떠냐고 조그련 관계자에게 제안했지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북한에 관심을 두고 돈을 주어도 남북 대화에는 실질적 진화가 없다. 실망했다. 북한과 대화나 교류를 하지 말자는 건 아니지만 지금의 방식은 의미가 없다.
진보 진영도 북한의 실체를 알아야 한다. 북한의 3대 세습은 김일성 정권의 대남 정책이 지금도 유지된다는 의미다. 80년대 내가 만났던 북한과 지금의 북한은 그대로다. 다른 국가가 변화가 없는데 우리나라만 목숨을 내놓고 평화를 이야기하는 건 옳지 않다. 우리가 전쟁에 대비했다면 북한이 한국전쟁을 일으켰을까.
절대적 평화주의와 현실적인 평화주의는 논쟁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그런 논쟁이 없고 평화를 절대시하는 견해만을 강조한다. 그래서 평택 미군 기지 반대 운동도 실패하지 않았나.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문제도 반론을 듣고 대화하면서 정론을 펴 가야 한다. 절대적 논리를 세워서는 안 된다.
- 시민운동을 하면서 진보 진영에 크게 실망한 것 같다.
크게 실망했다. 친북 좌파가 주장하는 통일론의 허구성과 한계를 자주 봤다. 다른 의견은 무조건 배척하는 모습을 보면서 '타고난 성격이 (어떤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 민주화 운동을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바닥에서 신뢰할만한 사람이 적다.
이른바 기사연 사건이 터진 뒤 기사연 원장을 맡았다. 들어가서 보니 돈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기독교인도 아니면서 기사연에 들어오고, 분열 사태까지 일으킨 운동권이 재산마저 팔아치운 것이다.
참여연대에 있을 때는 사상 문제로 답답한 적은 없었다. 다만 실무자들이 이념적 문제에만 관심을 두는 식의 '선택적 분노' 행태를 보일 때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시민 단체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는 곳이지 정치 세력과 야합하거나 정치권 눈치 보는 곳이 아니다.
문재인 후보는 노무현 정권 시절 세종시 문제를 논의하면서 만난 적이 있다. 당시 비서실장이었던 문 후보는 독단적이었다. 지금은 신사적인 이미지이지만, 세종시를 추진할 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
안철수 후보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 아름다운재단이 사무실이 너무 낡아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했을 때, 이사들에게 1000만 원씩 내 달라고 요청했다. 그때 유일하게 후원금을 내지 않은 사람이 안 후보다. 재단을 만들 만큼 돈이 많은 사람 아닌가. 안철수재단을 만들 때 아름다운재단 인사에 접근해 데려가려고도 했다.
- 박근혜 후보 캠프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해도, NLL 의혹 규명을 요청하고 야권 인사를 비판하면 결과적으로 박 후보를 지원하는 것처럼 보인다.
어쩔 수 없다. 야권을 비판하면 새누리당을 지지한다고 보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새누리당은 잘 모르지만, 한편으로 지금 단계에서는 새누리당이 집권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기독교 우파와의 싸움은 지쳤다. 이제는 기독교 좌파와 싸우려고 한다. 무리한 주장이라고 해도 밖에서 계속 문제를 제기해 주의를 환기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