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2. 09. Tuesday, Genesis 37:33

 2016. 02. 09. Tuesday

Genesis 37:33
And he knew it, and said, "My son's tunic! An evil beast has eaten him. Surely Joseph is torn in pieces." 


진 화론의 창시자로 알려진 찰스 다아윈을 비롯해서 진화론자들은 그들이 발견한 뼈나 화석 몇 개를 보고, (마치 야곱이 요셉의 피 묻은 옷을보고 엉뚱한 상상을 한 것처럼), 전혀 발생하지도 않은 것을 상상하여 진화론(Evolutionnism)이라는 이론을 만들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마치 역사적이고 과학적인 사실처럼 믿고 있다.

즉 원숭이의 뼈와 침팬지의 뼈, 그리고 이빨과 두개골, 굽은 등뼈 등을 조합해서 인류의 조상이 원숭이이며 진화를 거듭하여 현생 인류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 런데 정말 흥미로운 것은 지금 이 시대에는 인간과 원숭이 사이에서 진화를 거듭하고 있는 중간 단계의 반 인간이나 반 원숭이가 존재하지 않으며 거의 인간이 다 된 원숭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다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것들의 중간 고리화석이 발견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진화론자들에게 있어서 성경과 같은 찰스 다아윈이 쓴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ices)"이라는 책의 서문에서 그는 만약 종과 종 사이의 "중간 연결고리 화석"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그의 이론은 틀린 것이라고 기록했고 중간 연결고리 화석이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과학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고 오히려 하나님의 창조를 터무니 없는 거짓으로 믿고 있다.

과학적(scientific)이라는 것은 실험을 통해 그것이 증명되어야만 한다. 즉 동일한 조건과 상태, 동일한 시간의 흐름 등 실제로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와 같은 조건과 상태에서 실험을 해서 결과가 나와야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당시와 꼭 같은 시간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 때가 정확히 어떤 상태나 조건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실험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진화론은 전혀 과학적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진화론을 신앙적으로 받아들이고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탄은 에덴 동산에서부터 거짓말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을 진리에서 떠나게 했다.

일단 우리는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이 있으면 그것이 확실한 증거가 되어 야곱처럼 요셉이 죽지 않았다는 것을 부인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참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을 통해서 생겨나고 자라간다.


야곱은 요셉의 겉옷을 보자마자 그것이 요셉의 옷임을 알았다. 그리고 요셉이 악한 짐승에게 먹혔고 분명히 조각조각 찢어졌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것이 요셉의 옷이라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거기 묻은 피는 요셉의 피가 아니라 염소의 피였고 요셉은 들짐승에게 찢겨 죽은 것이 아니라 형들에게 팔려서 이집트로 가고 있었다.

요셉의 형들은 야곱에게 다른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왜냐하면 요셉의 피묻은 겉옷을 보여주는 것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아버지 야곱이 알아서 이야기를 상상하고 만들어 가며 감정으로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야곱처럼 내가 잘못된 관계에 있으면 그 잘못된 관계 때문에 쉽게 감정에 휘말리거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것 때문에 전혀 다른 결론에 이를 수 있다.

야곱은 요셉의 어머니 라헬과 감정적으로 깊이 묶여 있었고 그녀에게서 태어난 요셉에게 유난히 더 사랑과 관심을 보였다.

이것이 결국 요셉을 삣나가게 하기도 했고 형들의 미움을 유발시키고 야곱 자신을 처참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가기도 했다.

"거짓은 없는 것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을 없어지게 한다."

악한 들짐승은 실제로 이 사건에는 등장하지 않았던 존재지만 형들이 가져온 염소피로 적셔진 요셉의 옷을 본 야곱의 상상 속에 등장해서 요셉을 죽이고 뜯어 먹는다.

그 리고 실제로 등장해서 요셉을 도단까지 가게했던 그 이름없는 한 사람이나 요셉을 사서 이집트로 데려간 이스마엘 상인들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고, 마치 주연처럼 요셉을 잡아 옷을 벗기고 웅덩이에 던진 사람들, 염소를 잡아 피를 적신 그 형제들도 야곱의 상상 속에는 아예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요셉의 피묻은 옷이라는 꾸며진 사실(= 거짓) 때문에, 그리고 정반대로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사라진 요셉 때문에 실제로 살아있고 존재하는 요셉을 없는 것처럼 간주하고 살지는 않는가?

지금 당장 바닥난 재정이나 건강 때문에 실제로 존재하며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무시하거나 제거하며 살아가지 않는가?

반대로 말하면 눈에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는 어떤 것 때문에, 보이지는 않지만 시퍼렇게 살아서 존재하시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돈이나 엉뚱한 것을 하나님으로 만들어 섬기며 살아가지는 않는가?

눈에 보인다고 그것이 반드시 존재하는 것은 아니며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사막에서 나타나는 신기루는 눈에는 보이지만 실재하는 것이 아니며 구름에 가리워져 태양이 보이지 않는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내 눈에 보이는 것보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많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해서는 안되며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음으로 기다리며 찾아가는 연습도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