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1. 06. Wednesday, Genesis 37:4 (Love to Hatred)

 

2016. 01. 06. Wednesday

Genesis 37:4
But when his brothers saw that their father loved him more than all his brothers, they hated(שׂנא) him and could not speak peaceably to him.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편애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다른 형제들 눈에 보여지지 않았다면 아무런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야곱이 요셉에게는 다른 형제들과는 다르게 특별한 옷을 만들어 주는 등 눈에 드러나게 대했다는 것이다.

이처럼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누군가의 사랑을 받으면 그것은 반드시 눈에 보이게 드러나게 된다. 반대로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누군가의 미움을 받게 되어도 그것은 반드시 눈에 보이게 드러나게 된다.

내가 혼자 하는 짝사랑이라고 해도 그 사랑이 지나치면 상사병이 나게 되고 그 상사병 때문에 서로의 인생을 망칠 수 있다.

다윗의 아들 암논이 그랬다. 그는 자기의 이복 누이 다말을 사랑해서 상사병이 났다. 그래서 결국은 다말을 강간하게 되고 자기 자신도 다말의 오라비 압살롬에 의해 살해 당하게 된다.
세겜 성에 살던 하몰의 아들 세겜도 그랬다. 그는 야곱의 딸 디나를 강간하고 그녀를 사랑해서 할례를 조건으로 결혼을 추진하다가 그 자신은 물론 세겜 성의 모든 남자가 칼에 죽임을 당한다.

야곱도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를 아내로 취하기 위해 14년간을 밤의 추위와 낮의 더위를 무릅쓰면서 외삼촌 집에서 종처럼 살았다.

이처럼 일방적인 짝사랑이든지 쌍방적인 사랑이든지 사랑은 이론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눈에 보이게 드러나게 된다.

그것이 육체적인 호감(끌림)이든지 전인적인 사랑이든지 사랑이 있으면 반드시 눈에 보이는 어떤 것이 나타나게 된다.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그 사랑이 눈에 보이게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 사랑은 실제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실제적인 사랑은 반드시 눈에 보이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성경은 말한다. (딤전 6:10)

1 Timothy 6:10
For the love of money is a root of all kinds of evil, for which some have strayed from the faith in their greediness, and pierced themselves through with many sorrows.

뿌리가 살아 있고 봄이 오면 그 뿌리는 땅을 비집고 반드시 싹을 내게 되어 있다. 돈을 사랑하면 그 사랑 때문에 온갖 짓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그것이 뿌리이기 때문이다.  

내가 20대 후반이었을 때 나는 호감이 가는 어떤 사람 때문에 한동안 일주일에 한 통씩 시와 편지를 써서 보낸 적이 있었다. 물론 감사하게도 그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지금 아내를 만나 두 아들을 낳고 잘 살고 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듯이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사랑이란 말 뿐인 죽은 사랑이며 이런 사랑은 결국 미움과 증오를 낳게 된다. 즉 마음이 없는 위선적인 사랑이란 상대방에게 혐오감을 주고 오히려 미움과 증오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

오늘 이 그림은 마치 라헬이 야곱의 사랑을 받을 때 레아는 야곱의 미움을 받았던 그림과 비슷하다.

야곱이 외삼촌으로부터 속임을 당하고 라헬 대신 레아와 결혼의 첫날밤을 보낸 뒤 남편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7일 동안 레아와 잠자리를 함께 해야 했다.

그리고 라헬을 둘째 아내로 취하는 조건을 걸고 또 다시 7년의 종살이를 약속한 야곱은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라헬을 레아보다 더 사랑했다. (창 29:30)

Genesis 29:30
Then Jacob also went in to Rachel, and he also loved Rachel more than Leah. And he served with Laban still another seven years.

야곱은 라헬을 레아보다 "더 사랑한 것" 뿐이지만 레아가 실제 마음으로 받은 것은 "덜 사랑"이 아니라 "미움"이었다.

레아는 첫째 아들 르우벤을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남편 야곱의 사랑대신 미움을 받고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둘째 아들 시므온을 출산하면서 자기가 야곱으로부터 사랑을 받지 못하고(שׂנא = to hate) 있지만 하나님은 자기 마음의 고통을 들으셔서 그 아들을 주셨다고 고백했다. (히브리어에는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되어 있지 않고 미움을 받았다고 되어 있다.)  (창 29:33)

Genesis 29:33
Then she conceived again and bore a son, and said, "Because the LORD has heard that I am unloved(שׂנא = to hate) , He has therefore given me this son also." And she called his name Simeon.


"누군가의 사랑을 받으면 다른 누군가로부터 미움을 받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

우리는 돈과 하나님을 함께 섬길 수 없고 이 세상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Matthew 6:24
"No one can serve two masters; for either he will hate(שׂנא = to hate) the one and love the other, or else he will be loyal to the one and despise the other. You cannot serve God and mammon.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지 않는다면 내가 하나님을 세상보다 더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닐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누구든지 자기를 미워하고 자기 부모나 형제를 미워하지 않으면 당신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하신 것이 아닐까? (눅 14:26)

Luke 14:26
"If anyone comes to Me and does not hate(שׂנא) his father and mother, wife and children, brothers and sisters, yes, and his own life also, he cannot be My disciple.

내가 예수님을 "더 사랑"하여 그를 따르게 되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덜 사랑"이 아니라 미움과 증오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들을 미워(שׂנא = to hate) 하거나 증오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예수님을 그들보다 더 사랑하는 것 때문에 그들 안에서 이러한 미움과 증오가 일어나는 것이다.

만약 요셉의 형제들에게서 아버지의 편애로 인한 이러한 미움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요셉은 가나안 땅에서 행복한 목자로 살다가 그 인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형들의 미움 때문에 그의 삶은 일상의 안락함에서 떠나 죽음의 고비를 넘고 노예가 되어 아버지 집을 떠나지만 이러한 "사랑으로 인한 미움" 때문에 그의 인생은 아버지의 그늘과 가나안 땅이라는 지경을 벗어나게 되었고 목자의 운명(?)을 벗어나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 이 땅에 구체적으로 풀어지는 통로로 쓰임 받게 되었다.

베드로가 두 배 가득 잡은 물고기는 물론 배와 그물과 아내와 모든 것을 뒤로 하고 예수님을 따라갔을 때 그의 아내와 주변 사람들이 받은 느낌은 이와 같은 분노와 증오가 아니었을까?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 그를 따르기로 한 것 때문에 그가 갑자기 아내나 가족을 미워하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가 예수님을 "더 사랑"하게 되면서 가족들이 받은 느낌은 "덜 사랑"이 아니라 "미움"이며 "증오"였을 수 있다.

그러므로 내가 누구를 더 사랑하게 되면 지금까지 같은 사랑을 받아왔던 어떤 사람이 느끼는 것은 덜 사랑이 아니라 미움이 될 수 있다.

정말로 예수님을 이 세상 무엇보다 더 사랑해서 따르지 않는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고 이 세상이 우리를 미워하지도 않을 것이며 나는 이 세상에서 행복한 목사로, 행복한 갈릴리의 어부로 적당히 종교생활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예수님을 이 세상보다 더 사랑하게 되면 이 세상이 나를 미워하게 될 것이고 그 때문에 나는 죽음의 고비를 넘어야 하고 친숙한 곳을 떠나 낯선 땅으로 노예가 되어 팔려 가야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비로소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삶을 살게 되고 나를 미워하고 죽이려 했고 팔았던 원수조차 용서하고 품는 예수님의 제자,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나는 예수님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고 있는가? 아니면 아니면 이 세상과 예수님을 꼭 같이 사랑하고 오히려 세상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사랑과 환영을 받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