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31. Thursday, Genesis 36:42

 

2015. 12. 31. Thursday

Genesis 36:42
Chief Kenaz, Chief Teman, Chief Mibzar,

딤나, 알바, 여뎃, 엘라, 비논, 밉살, 막디엘, 이람 등은 처음 등장하는 이름이고 오홀리바마, 그나스, 데만 등은 이미 앞에서 나온 이름이 반복되고 있다.

이렇게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등장해도 그들은 이름만 같을 뿐 같은 사람이 아니며 같은 시대도 아니다.

이처럼 우리가 이전에 살았던 어떤 사람과 이름이 같고 생긴 모습이 비슷하다고 그 사람처럼 살 수도 없으며 그 시간이나 역사(history)를 반복할 수도 없다.

몇년 전 한국 대통령 후보에 나섰던 이인제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생김새가 박정희 대통령과 아주 흡사하다고 해서 많은 사람이 그에게 기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속한 당 내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떨어지자 그는 그 당을 탈당하고 개인적으로 출마함으로써 많은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 주었다.


예수님은 그의 출신 배경이나 생긴 모습으로 볼 때 그 당시 사람들이 기대하고 있었던 메시아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삶을 보고 그가 하는 것을 볼 때 그는 메시아(= 기름부음 받은 자) 같았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감옥에서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어 오실 그 분이 정말 맞는지를 물었을 때, 그들이 듣고 본 것, 즉 (이사야 61장에 예언된 것처럼) 장님이 보고 절름발이가 걷고 문둥병자가 깨끗케 되고 귀머거리가 듣고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들에게 천국 복음이 전파되고 있는 것을 가서 전하라고 했다. (마태 11:3-5, 사 61:1-3)

Matthew 11:3-5
3 and said to Him, "Are You the Coming One, or do we look for another?" 4 Jesus answered and said to them, "Go and tell John the things which you hear and see: 5 "The blind see and the lame walk; the lepers are cleansed and the deaf hear; the dead are raised up and the poor have the gospel preached to them.

Isaiah 61:1-3
1 "The Spirit of the Lord GOD is upon Me, Because the LORD has anointed Me To preach good tidings to the poor; He has sent Me to heal the brokenhearted, To proclaim liberty to the captives, And the opening of the prison to those who are bound; 2 To proclaim the acceptable year of the LORD, And the day of vengeance of our God; To comfort all who mourn, 3 To console those who mourn in Zion, To give them beauty for ashes, The oil of joy for mourning, The garment of praise for the spirit of heaviness; That they may be called trees of righteousness, The planting of the LORD, that He may be glorified."

예수님은 유월절의 어린양으로 하나님의 시간에 맞춰 오셨고 하나님이 이미 예언하시고 준비하신 성전 제사에 바쳐지는 흠없는 양을 치던 그 베들레헴 땅에 오셨으며, 하나님의 시간에 맞춰 사시다가 예루살렘에서 죽으셨다.

나는 얼마만큼 하나님의 시간과 하나님이 나를 위해 준비하신 그 땅을 알고 그 시간에 맞춰 살고 있으며 또한 그 땅에서 죽을 준비를 하며 살고 있는가? (행 17:26-27)

Acts 17:26-27
26 "And He has made from one blood every nation of men to dwell on all the face of the earth, and has determined their preappointed times and the boundaries of their dwellings, 27 so that they should seek the Lord, in the hope that they might grope for Him and find Him, though He is not far from each one of us."


엘리야의 영을 갖고 왔던 세례 요한은 엘리야도 아니었고 엘리야처럼 꼭 같이 흉내 내며 살아갈 수도 없었다. 그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메시아의 길을 예비하며 살다가 갔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는 결코 반복되거나 복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아주 독특한 특성(uniqueness)을 주셨기 때문이다. 즉 일란성 쌍둥이라고 해도 그들은 지문도 다르고 홍채도 다르며 성격도 다르다.

사람들은 자신과 꼭 같이 복사된 클론(clone =복제인간)이 나오면 자기 몸의 일부분이 손상되었을 때 쉽게 복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복제인간을 꿈꾸고 있다.

그리고 영화에도 다양한 주제로 클론이 등장하지만 영이 없는, 육체와 혼만 가진 인간을 복사해서 만들어 낸다고 해도 그들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인간처럼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내가 다른 사람의 삶을 복사해서 살아갈 수도 없겠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다.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를 복사해서 흉내 내고 사는 것도 끔찍하다.

만약 내가 그렇게 누군가의 삶을 흉내 내며 살려고 한다면 너무나 피곤하고 혼란스런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이 땅에 사는 단 한 사람 뿐인 나로서 모든 부분에서 독특하게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우리는 길을 가다가 나와 꼭 같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만 보아도 피해 가거나 얼른 집에 가서 옷을 갈아 입고 싶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개성있고 독특하게 창조주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음을 보여주는 인간의 한 면모가 아닐까?

우리는 수퍼 스타처럼 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실제로는 정말 나를 찾고 "나"라는 존재로 마음껏 살고 싶은 것이다.

아무리 성형을 잘 해서 나의 외모를 멋진 할리우드 스타처럼 만들어 놓았다고 해도 나는 결코 그 복사품에 만족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진짜는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레고리안 달력(양력)으로 2015년의 마지막 날이다. 그리고 내일은 2016년의 첫 날이 된다. 오늘 밤에는 곳곳에서 사람들이 밤을 새며 묵은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는 축제와 기도회 등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이 2015년의 마지막 날에 홍수로 술렁이는 영국 잉글랜드 서북쪽의 캄브리아(Cumbria)의 한 산에 미친놈처럼 올라와서 텐트를 치고 장대비가 쏟아지는 텐트 안에서 이 글을 쓰며 묵상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묵은 해가 가고 새 해가 된다고 난민들(refugees)이 자연적으로 정착민(settlers)이 되는 것이 아니며 독신이 자동적으로 결혼을 해서 가정을 갖게 되는 것도 아니다.

사실 달력이 바뀌어도 우리의 삶은 거의 달라진 것 없이 어제와 비슷하게 그대로 진행된다. 한 해가 가고 새 해가 왔다고 해서 얼굴에 갑자기 주름이 많이 생기거나 흰머리가 갑자기 무성해 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왜 우리는 이렇게 시간에 민감하며 2015년에서 2016년으로 넘어가는 그레고리안 달력에 민감할까?

왜냐하면 우리는 오랫동안 이 달력(양력)에 길들여져 왔고 대중매체에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지금 국제적인 시간이나 경제 흐름들은 그레고리안 달력을 따라 진행이 되지만 여전히 유대인들은 유대력을 따라 살아가며 콥틱 크리스챤들은 콥틱 달력을 따르고 이란인들은 이란의 전통적인 달력을 따라 새해를 축하하며 살아간다.

우리 사회는 양력을 따라 살고 있지만 우리 부모 세대는 양력대신 음력을 사용해 왔고 지금도 음력을 따라 구정을 가장 큰 명절로 지키고 있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이 주신 달력은 시간이 가고 날이 가고 해가 바뀌면 관계의 변화와 신체의 변화, 그리고 실제로 땅에서 변화들이 일어난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날이니라." 저녁이 되면 낮에 하던 것을 멈추고 쉬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날이 주어지고 사람들과의 새로운 관계,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6일 동안 일하고 제 7일이 되면 평소에 하던 것을 멈추고 쉬어야 한다. 이렇게 6년의 시간이 지나고 제 7년이 되면 사람도 쉬고 땅도 쉬게 해야 한다. 그리고 7번의 안식년이 지나고 50년이 되면 희년으로, 빚 때문에 팔렸던 사람들이 자유를 얻게 되고 땅이 원래 주인에게로 돌아가고 기쁨이 선포된다.  

즉 그레고리안 달력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우리의 삶에 직접 변화가 일어나지 않지만 하나님의 달력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리가 믿음으로 순종하고 살아갈 때) 우리의 실제 삶과 땅에 변화들이 일어난다.

사람들이 멈추고 쉼을 누리면서 몸과 마음이 회복되기 시작하고 땅도 쉼을 누리면서 그 힘을 회복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빚지고 팔렸던 것들이 탕감되면서 관계의 회복도 일어난다.
 
그러므로 내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하루, 하나님의 7일, 하나님의 7년, 하나님의 희년을 제대로 누리지 않고 살아간다면 하루나 일주일, 일년이나 7년, 그리고 희년이 오고 가더라도 그것과는 상관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쉼없이 삶과 관계에 변화없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참된 새 해란 달력이 바뀌었다고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며 내가 뭔가를 새롭게 계획하고 시작한다고 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참된 새 해란 내가 지금까지 쉼없이 해 왔던 것들을 멈추는데서 시작된다.

나는 이미 지난 3년 동안 매일 참석해 왔던 아침 묵상 나눔 모임에 참석하는 것을 일주일에 두 번으로 팍 줄였고 아침에 찬양 인도하는 것도 완전히 멈추었다. 그리고 제 7일에 묵상하는 것도 멈추었다. 또한 약 2년 전 일이지만, 거리에서 찬양하는 것도 멈추었다.

이러한 멈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행하고 계신 새 일들을 보고 있다. 그 당시에 멈춘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신뢰하고 멈추었기에 하나님께서 새 일을 행하고 계신 것이다.

이제 내가 또 멈추어야 할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지속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 실제 매일의 삶 속에서 뿐 아니라 생각과 관계 속에서 정리하고 멈추어야 할 것과 지속해야 할 것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여기 산에 와서 홀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미 누군가 먼저 사용한 이름을 자기 아이에게 주었다는 것은 그 이름 자체가 좋은 의미를 갖고 있거나 그 이름을 가졌던 사람이 훌륭한 삶을 살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므로 오홀리바마, 그나스, 그리고 데만이라는 이름은 좋은 뜻을 가졌거나 그  이름을 가졌던 사람들이 훌륭한 삶을 살았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누군가가 그 이름을 다시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6백만의 유대인을 가스실에서 죽인 "히틀러"라는 이름을 자기 자녀에게 주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자기 힘과 덩치를 자랑하며 큰 소리로 하나님을 모욕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욕하다가 다윗의 물매돌에 나가 떨어진 "골리앗"이라는 이름을 자기 자녀에게 주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유대인 몰살 계획을 세우고 진행하던 중 모르드개와 에스더의 믿음의 결단으로 오히려 역으로 죽임 당한 "하만"이라는 이름을 자기 자녀에게 주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아마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런 이름을 자기 자녀에게 주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위에 언급된 이름을 가졌던 사람들은 사악한 삶을 살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 했기 때문이다.


에스더의 원래 이름은 하닷사(הדסּה = mrytle)였다. 그런데 모르드개가 그녀의 이름을 에스더로 바꾸고 왕비 후보로 나가게 한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하닷사는 히브리어 이름이고 모르드개는 에스더에게 그녀의 배경을 숨기라고 했기 때문이다.  

에스더라는 이름은 바알 신과 함께 등장하는 "아스다롯(עשׁתּרות = increase)"이라는 다산의 여신에게서 나온 이름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그렇다면 에스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멋진 이름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에스더가 목숨을 건 믿음의 삶을 통해 그 이름의 의미를 완전히 바꾸었기에 지금은 많은 사람이 "별"이라는 뜻으로 그 이름을 사용한다. (단 12:3)

Daniel 12:3
Those who are wise shall shine Like the brightness of the firmament, And those who turn many to righteousness Like the stars forever and ever.


내가 죽고 난 뒤 내가 살았던 삶 때문에 나의 이름을 자기 후손들에게 주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어떤 이름을 갖고 무엇을 성취했든지 간에 결국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신 그 이름 앞에 모두 무릎 꿇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아무도 없는 이 산 위에서 그 분께 무릎 꿇는 것을 연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