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1. 31. Sunday, Genesis 37:25
2016. 01. 31. Sunday
Genesis 37:25
And they sat down to eat bread. And they lifted up their eyes and looked. And, behold, a caravan of Ishmaelites coming from Gilead! And their camels were bearing spices, and balsam gum, and myrrh, going down to take them to Egypt.
요셉의 형제들은 재빠르게 감쪽같이 요셉을 처리하고 난 뒤 지치고 허기진 감정을 빵으로 떼우기 위해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그들이 눈을 들어 보았더니 길르앗에서 이집트로 내려가는 한 떼의 이스마엘 향품 상인들 행렬이 보였다.
지금까지 형들은 그들끼리 요셉을 죽이기로 음모를 꾸몄지만 르우벤의 제안을 따라 그들의 음모를 바꾸어 요셉을 그들의 손으로 직접 죽이는 대신 마른 우물에 던져 죽이기로 하는데 동의했다.
즉 이 모든 음모는 멀리서 오는 요셉을 본 형들이 자기들끼리 꾸미고 그들끼리 동의하고 진헁했다.
그리고 요셉이 형들 앞에 나타나면서 그는 옷을 잃은 것 뿐 아니라 형제들과의 관계와 꿈(소망)마저 잃었고 울며 애원하다 기진한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스마엘 상인들이 나타났고 그들에게 팔린 요셉은 그들과 함께 형졔들의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처럼 우리가 살다보면 종종 주변 상황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내 목을 조이고 가장 가까이 있고 함께 하나님 아버지의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나를 힘들게 하고 죽이려 하며 나를 우물 안으로 던지는 경우를 본다.
그리고 우물 안에 갇혀서 비통하게 부르짖고 있는 나에게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때마침 나타난 이스마엘 상인들이 요셉을 그 마른 우물에서 구출해 주기는 하지만 그의 인생은 노예로 전락하고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길을 형들에 대한 원망과 두려움 속에 떠나게 된다.
일반적인 우리의 삶은 이스마엘 상인들이라고는 만나본 적도 없고 만날 일도 없이 늘 주변에 있는 가족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평범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인생의 위기를 만나고 모든 것을 잃어 버리는 상황을 직면하게 되면 전혀 예상치 못했던 존재를 만날 수 있다.
왜냐하면 내가 일상 속에 둘러싸여 살아갈 때는 다른 존재가 들어갈 틈이 없이 빡빡하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일상이 깨어지고 나의 기대가 어긋나게 되면 비로소 눈을 위로 돌리게 된다.
이렇게 자기를 그 우물에서 꺼내어 준 이스마엘 상인들이 나타났을 때 요셉은 너무나 기뻤을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때 맞추어 등장한 이스마엘 상인들은 요셉의 인생을 더 비참하게 만들어 버렸고 약속의 땅 가나안의 무대에서 그를 완전히 제거해 버린다.
그러나 형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스마엘 상인들은 하나님이 때마침 보낸 천사들이었다. 왜냐하면 자기들 손으로 요셉의 피를 흘리지 않고 그를 가나안 땅에서 완전히 제거할 수 있었으며 거기다가 돈까지 벌 수 있도록 해 주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인생길은 내가 아버지 말씀대로 순종해서 세겜을 지나 도단까지 왔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의 기대와는 전혀 달리 마치 그 형들이 꾸미고 계획한 대로 되어 가는 것 같고 그나마 때마침 등장한 이스마엘 상인 같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들은 나를 더 비참한 노예 상태로 떨어지게 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아버지의 집과는 전혀 다른 이집트로 이끌어 간다.
이로 인해서 르우벤이 다른 형제들 몰래 요셉을 구출해서 아버지께로 데려가려는 계획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하나님은 이 모든 상황을 알고 계시며 언제(when) 누구를(who) 어디에(where) 왜(why) 등장시켜야 하는지를 아신다.
그러므로 내가 기대하고 있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는다고 조급해 하거나 초조해 하지 말자. 그리고 내가 기대했던 사람이 사라졌다고 안타까와 하거나 원망하지 말자.
또한 그 때 등장한 이스마엘 상인들의 역할이 요셉을 풀어주고 아버지께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요셉을 노예로 만들어 더 낮추고 가나안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임을 기억하고 절망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요셉이 가나안 땅을 떠나면서부터 지금까지 그의 인생에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었던 여호와 하나님이 나타나 그와 함께 하신다.
즉 육신의 아버지 야곱이 준 옷이 사라지고 야곱의 그늘이 사라지자 비로소 하늘 아버지의 보호와 동행 가운데 요셉은 하나님이 준비한 이집트 총리의 새 옷을 입을 사람으로 만들어져 간다.
그 때 나타나 요셉을 노예로 산 이스마엘 상인들은 노예상인들이 아니라 향품을 파는 상인들이었다. 즉 그들은 요셉의 형들이 기대했던 노예 상인들은 아니었지만 은 20개를 주고 요셉을 노예로 산다.
만약 이들이 노예 상인들이었다면 이들은 요셉을 "노예시장"으로 데려갔을 것이고 평범한 사람들의 노예로 팔렸을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이들이 향품 상인들이었기에 고위 관리나 귀족들이 찾는 "향품시장"으로 갔을 것이고 거기에 나타난 근위 대장 보디발의 눈에 띄인 요셉은 그에게 노예로 팔려간다.
이처럼 내 인생에도 노예 상인이 아닌 향품 상인이 나타나 비싼 값을 치루고 나를 엉뚱한 이집트 땅으로 데려갈 때가 있다. 이것이 은혜이고 기적이 아닌가?
내가 기대했던 사람이나 상황이 나타나지 않아 답답하고 절망적이 되기도 하고 기대한 사람이나 상황과는 너무나 다른 엉뚱한 사람이나 상황이 나타나 더 황당하고 더 비참해 지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알면 그것이 기적이고 은혜이다.
물론 나는 애원하고 부르짖어 보지만 이미 마음이 굳어지고 마음이 닫힌 형들은요셉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그동안 앓아왔던 이가 빠진 것처럼 요셉이 사라진 것을 인해 감사하고 요셉을 팔고 번 돈을 나누어 가지며 기뻐하고 있었다.
나는 지금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으며 어떤 상황 가운데 있는가? 이것은 내가 기대했던 사람들과 상황들인가? 아니면 전혀 내가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들과 사람들인가?
그들은 내가 떠나왔던 아버지 집으로 가도록 도와 주는가? 아니면 나를 노예로 만들고 전혀 소망없어 보이며 절망적으로 보이는 이집트 땅으로 데려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헤브론으로 가기 원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이집트로 데려 가셔야만 한다. 나는 가나안 아버지 집에 머물기 원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바로 왕의 궁궐로 가기 원하신다.
만약 지금 내가 헤브론으로 돌아간다면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 하며 안정된 목자로 살아가겠지만, 노예로 끌려간 이집트 땅에서는 절망밖에 보이지 않기에 이스마엘 상인들로부터 도망치거나 죽음을 선택할 수도 있다.
가나안에서는 야곱의 그늘이 너무 짙고 야곱이 너무 가까이 있어서 하나님이 끼어들 틈이 없었다. 하지만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에게는 더 이상 야곱의 임재나 그늘이 없었고 다른 소망이나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끼어들 수 있었고 하나님이 함께 할 수 있었다.
이처럼 요셉은 모든 것을 잃고 아무도 없는 노예가 된 비참하고 절망적인 이집트 땅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나는 가나안 땅에서 사람들과 동행하는데 너무 익숙해 있지 않는가? 사람들이 준 지위나 특권에 취해 요셉처럼 거만하게 살고 있지는 않은가?
아니면 형들에게 거절당하고 팔려 노예가 되어 소망없는 이집트 땅에 살더라도 기꺼이 거기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배우고자 하는가?
하나님은 어딘가에 이스마엘 향품 상인들을 준비시켜 놓고 내가 절망적인 우물 속에서 부르짖기를 기다리고 계신 것은 아닐까?
하루 아침에 형편없는 노예가 되어 이집트로 끌려간다고 좌절하거나 낙심하고 자살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바로 그때가 하나님이 등장할 때이며 바로 그 때 나타난 이스마엘(ישׁמעאל = God will hear) 상인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그 부르짖음을 듣고 계신다"는 신호를 주시는 것이다.
지금 여러 면에서 어려움과 도전이 있고 가까이 있었던 사람으로부터의 거절이 있지만 오히려 이 사건과 이 시간이 전혀 다른 차원에서 하나님의 또 다른 등장을 예고하는 것은 아닐까?
하나님은 평범하게 살며 아버지의 편애를 받으며 일상을 살고 있던 요셉의 삶에 비상한 방법으로 찾아 오신다.
첫번 째는 세겜에서 형들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을 때 이름없는 한 사람으로 찾아 오셨고, 두번 째는 물이 없는 우물에 던져진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이스마엘 상인으로 찾아 오셨다.
그리고 세번 째는 노예가 되어 절망적인 삶을 보디발의 집에서 살고 있을 때 그를 찾아 와 함께 하시며 결코 떠나지 않으시고 요셉을 통해 이스라엘이 나라로 태어나는 당신의 영원한 목적을 이루어 가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