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1. 27. Wednesday, Genesis 37:22

 

2016. 01. 27. Wednesday

Genesis 37:22
And Reuben said to them, Do not shed blood. Throw him into this pit in the desert, but do not lay a hand on him; so that he might deliver him from their hands, to return him to his father.      


요셉의 피를 흘려서는 안된다고 말한 르우벤은 광야에 있는 한 특정한 우물(웅덩이; this pit)을 지정하며 거기에 요셉을 던지라고 했다.

그 지역에는 적어도 두 개의 우물이나 두 종류의 우물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역 이름이 "두 개의 우물"이라는 뜻으로 "도단(דּתן = two wells)"이라고 불리워지지 않았을까? (생명의 우물과 죽음의 우물, 아니면 물이 있는 우물과 물이 없는 우물...?)

르우벤이 지정한 우물은 어떤 특정한 곳에 있는 물이 없는 마른 우물이었다. 그러므로 이 우물은 목자들에게 있어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우물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무 짝에도 쓸모없이 버려진 빈 우물이었고 아무도 찾지 않는 우물이었지만 죽음의 위기에 처한 요셉을 받아 주고 그의 눈물과 통곡을 받아 주었다.

물이 없는 우물이란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고 그냥 자리만 차지하며 때로는 지나가는 사람이나 동물을 위험에 빠뜨리는 함정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우물이 바로 그 극적인 순간에 요셉을 보호하고 구하기 위해서 지금까지 메마르고 빈 상태로 외롭게 존재해 왔다면 그 존재 가치가 충분하지 않은가?

예레미야가 빠졌던 그 말기야의 우물(웅덩이)에도 물이 없었기 때문에 예레미야가 익사하지 않았고 나중에 구출될 수 있었다. (렘 38:6)

Jeremiah 38:6
And they took Jeremiah and threw him into the pit of Malchiah, the king's son, which was in the court of the guardhouse. And they let Jeremiah down with ropes. But no water was in the pit, only mud. So Jeremiah sank into the mud.  


하갈과 이스마엘이 아브라함의 집에서 쫓겨나 광야에서 죽어가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의 부르짖음을 듣고 하갈의 눈을 열어 우물을 보게 했다.

물이 없는 우물을 찾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살기 위해서는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가성의 그 여인도 그 더운 뙤약볕을 무릅쓰고 우물로 나온 것이다. 하지만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요셉을 살리기 위해서는 물이 없는 우물이 필요했다.

이처럼 평소에는 전혀 가치가 없고 오히려 장애물처럼 존재해 왔던 것이지만 위기의 순간에는 나를 보호해 주고 죽음에서 건져주는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물이 없다고 무시해서는 안된다. 즉 돈이 없고 배우지 못했다고 무시해서도 안되며 권력이 없고 힘이 없다고 무시해서도 안된다.

오히려 내가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무시를 당하더라도 광야의 마른 우물처럼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 우물은 마을 어귀나 마을 안에 있지 않고 사람들로부터 떨어진 광야(מדבּר = a desert, speech)에 있었다.

광야 사막에서는 정말로 물이 필요한데 물이 없는 우물이라면 아무 짝에도 소용이 없고 오히려 실망만 주고 방해만 된다.

하지만 바로 이 위기의 순간 르우벤과 요셉에게는 물이 없는 이 우물이 필요했고 이 우물이 요셉을 살리는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하나님의 말씀(דּבר = to arrange, to speak)은 자주 광야에서 주어진다. 하지만 그 광야에서 발견되는 말씀이란 마치 물이 없는 마른 우물처럼 별 의미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아예 무시 당하고 지나쳐 버리기 일쑤이다.

물론 아버지의 집에서 쫓겨나 물이 떨어진 광야에서 부르짖는 이스마엘을 살리기 위해서는 물이 있는 우물이 필요하지만,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 형들을 찾아왔다가 그 형들로부터 죽음을 당할 위기에 빠진 요셉을 살리기 위해서는 물이 없는 마른 우물이 필요하다.

르우벤이 요셉을 살리기 위해서 아무리 방법을 강구한다고 해도 그 마른 우물이 거기에 없었다면 요셉은 형제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요셉의 형들이 양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물이 넉넉한 우물이 필요했겠지만 르우벤이 요셉을 살리기 위해서는 물이 가득한 우물이 아니라 물이 없고 아무 짝에도 필요없었던 이 한 개의 마른 우물이 필요했다.

나는 돈도 없고 권력도 없고 예수님 외에는 별로 가진 것이 없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마른 우물과도 같아 보이지 않을까?

내가 지난 42년 동안 독신으로 살고 있었을 때는 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가정이 있지만 별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이것이 내가 광야 같은 이 땅을 살아가는 나그네의 삶이 아닐까?

이 광야 같은 인생 길을 가면서 별로 가진 것 없는 마른 우물로 존재한다고 해도 요셉 같이 형제들로 인해서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한 이들을 받아 주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줄 수 있는 공간이 나에게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한다.

때로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물을 찾아 왔다가 말라 있는 나를 보고 실망해서 돌을 던지며 돌아서거나 험한 말을 내뱉고 갈 수도 있겠지만 요셉과 같이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이집트로 내려가는 여정에 있는 사람들을 한동안 받아주고 생명을 보호해 줄 수 있다면 기꺼이 이 자리를 지킬 이유가 있고 가치가 있다.

예수님은 마른 우물이 아니라 단단한 반석이셨다. 하지만 물이라고는 흔적도 찾을 수 없는 그 반석이 깨어지면서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수가 쏟아져 나왔다.


르우벤은 요셉을 아버지께로 빼어돌리려는 숨은 의도를 갖고 있었지만 그의 숨은 의도는 성취되지 못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르우벤보다 더 깊은 곳에 당신의 숨은 의도를 갖고 계셨고 형들의 방해와 보디발 아내의 유혹이 있었지만 결국은 그것이 이루어지고 말았다.

이것이 하나님의 열심이며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다 성취되고 지불된 그 피 값의 결과이다.

"다 이루었다!"

나는 이 광야 같은 세상에서 마른 우물로서 요셉 같은 사람을 기꺼이 받아주며 살아가고 싶다. 비록 사람들의 오해나 돌팔매, 그리고 욕설이 있다고 해도 생명을 받아주고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어주는 이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가?

단단한 반석 속에 영원한 생수를 감추어 두신 하나님의 숨은 의도는 감히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 하지만 성령님은 그것을 간간히 알려 주시며 격려해 주신다. (고전 2:10)

1 Corinthians 2:10
But God revealed them to us by His Spirit, for the Spirit searches all things, even the depths of God.  

승애 자매의 비자 여정과 주선 자매의 비자 여정, 지숙 자매의 이스라엘 여정과 진섭 형제의 믿음 여정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숨은 의도를 보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마른 우물 속에 감춰진 하나님의 숨은 의도를 인해서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