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1. 26. Tuesday, Genesis 37:21

 

2016. 01. 26. Tuesday

Genesis 37:21
And Reuben heard, and he delivered him from their hands, and said, Let us not smite his soul.  


르우벤(ראוּבן)은 "라아(ראה = to see / 보다)"라는 단어와 "벤(בּן = son / 아들)"이라는 단어의 복합어로 그 이름처럼 자기 눈에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살아온 사람처럼 보인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눈에 보이는 육체의 정욕을 따라 계모인 빌하와 잠자리를 같이 하여 아버지의 침상을 더럽히고 장자권을 잃어 버리게 된다. (창 35:22, 49:4)

Genesis 35:22
And it happened, when Israel dwelt in that land, that Reuben went and lay with Bilhah his father's concubine; and Israel heard about it. Now the sons of Jacob were twelve:

Genesis 49:4
Like bubbling water you shall not excel, for you went up to the bed of your father; then you defiled it; he went up to my couch.      


이렇게 "(눈으로) 보다"는 이름을 가진 르우벤이 형제들이 하는 말을 "듣고(שׁמע = to hear, to listen)"는 요셉을 자기들의 손으로 죽여서는 안된다고 막아선다. 그리고 이 말을 "들은(שׁמע = to hear, to listen, to obey)" 형제들은 요셉을 죽이는 대신 물이 없는 웅덩이에 던진다.

그리고 나중에 이스마엘 상인들이 그리로 지나가는 것을 본 유다가 요셉을 죽게 버려두지 말고 팔자고 했을 때 그의 말을 들은 형제들이 은 20개에 그를 노예로 팔아 버린다.

이처럼 요셉의 형제들은 르우벤의 말을 "듣고" 요셉을 직접 죽이는 대신 웅덩이에 던졌고 유다의 말을 "듣고"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노예로 팔았다.

만약 르우벤이 나서서 말하지 않았다면 요셉은 그 형제들의 손에 직접 죽임을 당했을 것이고 유다가 나서서 말하지 않았다면 요셉은 그 웅덩이에서 죽었든지 르우벤에게 구출되어 고향으로 다시 돌아갔을지도 모르지만 결코 이집트로 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믿음은 듣는데서 나온다고 하는 말이 맞다. (롬 10:17)  누구의 말이든지 내가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가진 사람의 말을 듣게 되면 믿음이 생기게 되고 설득을 당하여 그가 말하는 대로 동의하고 따르게 된다.

Romans 10:17
Then faith is of hearing, and hearing through the Word of God.  
 

아브라함은 눈에 보이는 상태나 조건을 보면 전혀 소망이 없었지만 그때까지 그를 인도하고 보호하며 공급해 오신 하나님께 완전히 설득을 당해서(being fully persuaded) 99세의 나이에 아내와 잠자리를 하게 되고 100세에 이삭을 얻게 된다. (롬 4:19-21)

Romans 4:19-21
19 And being about a hundred years old , not weakening in faith, he did not consider his body to have died already, nor yet the death of Sarah's womb, 20 and did not stagger by unbelief at the promise of God, but was empowered by faith, giving glory to God, 21 and being fully persuaded that what He has promised, He is also able to do.

제대로 된 관계 속에서 듣게 되면 믿음이 생기고 그 믿음이 생명을 낳고 그 믿음이 생명을 건지게 한다.

하지만 관계가 얕거나 관계가 틀어져 있으면 어느 정도의 신뢰는 주고 받을 수 있겠지만 속으로는 다른 계산기를 두들기며 불신 속에 살아가고 결국에는 죽음과 파멸을 가져온다.

한 집에 부부로 실면서 각기 다른 통장을 갖고 사는 사람을 알고 있다. 도대체 왜 그들은 각기 다른 통장을 갖고 있는 것일까?

 
야곱의 형제들은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을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르우벤의 말을 듣고 유다의 말을 들었던 것이 아닌가?  

하지만 르우벤이 요셉을 자기들 손으로 죽이지 말고 웅덩이에서 스스로 죽게하자고 한 것은 요셉을 구출해서 아버지에게 데려가려는 다른 꿍꿍이 속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형제들이 이것을 알았다면 르우벤을 신뢰하고 요셉을 물이 없는마른 웅덩이에 던져서 살게 했을까?

요셉이 없어진 것을 발견한 르우벤이 옷을 찢고 통곡하며 어쩔줄 몰라할 때 누구도 그에게 요셉을 팔았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다. 즉 형제들은 르우벤을 속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이들은 서로에게 어느 정도의 신뢰는 있었지만 전적인 신뢰는 없었고 서로를 속이고 있었다.
 
이처럼 르우벤은 나중에 마른 웅덩이에 던져졌던 요셉이 없는 것을 보고(see) 자기 옷을 찢고 견딜 수 없는 반응을 보이지만 형제들에게 물어보지 않았고 다른 형제들도 그 사실을 말해 주지 않았다.

왜 르우벤은 형제들에게 물어보고 듣지 않은 것일까? 왜 르우벤은 하나님께 물어보고 듣지 않은 것일까?

그는 자기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고 행동한 것이다. 그는 요셉이 웅덩이에서 사라진 것을 보고 들짐승에게 먹혔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그의 아들들이 하는 말을 듣고 요셉의 피 묻고 찢어진 옷을 본 야곱은 요셉이 들짐승에게 찢겨 죽었다고 확신한다. 왜냐하면 그 옷이 요셉의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창 37:33)
 
Genesis 37:33
And he knew it, and said, My son's tunic! An evil beast has eaten him. Surely Joseph is torn in pieces.  

이와 같이 눈에 보이는 것이 요셉의 옷이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 묻은 피는 염소 피였고 찢어진 것은 형들이 찢은 것으로 다 꾸며지고 조작된 거짓이었다. 단지 눈에 보이는 요셉의 진짜 옷은 그 거짓을 더 강하게 확증시켜 준 것 뿐이다.


이삭은 그 요리를 갖고 들어온 아들의 목소리가 야곱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는 촉각과 후각을 더 의지했고 자신이 고기 요리를 부탁하고 고기 요리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한 말에 속은 것이다.

즉 나이가 많았던 이삭은 자기 눈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촉각과 후각을 사용했고 청각도 사용했으나 결정적으로 올바르게 판단한 청각은 무시당하고 후각과 촉각에 의해 야곱은 에서로 인정받게 된다. (창 27:22)

Genesis 27:22
And Jacob came near to his father Isaac. And he felt him, and he said, the voice is the voice of Jacob and the hands are Esau's hands.  


우리는 내가 말하고 약속하고 기도하고 기다리는 어떤 것이 있을 때, 결정적인 음성이 하나님의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도하고 기다려 왔다는 것 때문에 그것을 덥썩 움켜 쥘 때가 많다.

아무리 다른 조건들이 다 맞고 좋다고 해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즉 기초가 하나님이 아니라면 다른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목소리가 야곱의 목소리라면 털이 에서이고 옷에서 나는 냄새가 에서의 냄새라고 해도 이삭은 그 아들이 야곱인지 아닌지를 다시 확인했어야 했다.

아마도 이삭은 그 맛있는 고기 냄새 때문에, 어서 고기 요리를 먹고 싶어서, 아니면 어서 축복을 하고 싶어서 더 확인하지 않고 청각, 촉각, 후각을 투표에 부쳐서 1:2로 민주주의 다수결에 원칙에 의해 에서(Esau)라고 결론 짓고 맛있는 요리를 먹고 야곱에게 에서의 축복을 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돈 냄새 때문에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듣지도 않고 마치 하나님의 축복인 것처럼 몰아간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돌아 보시는 분이시지만 하나님이 보시게 되면 상황과 관점은 전혀 달라진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겉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을 보시기 때문이다. (창 29:31)

Genesis 29:31
And Jehovah saw that Leah was hated. And He opened her womb, but Rachel was barren.  

야곱은 레아의 외모를 보고 그녀를 미워했으나 하나님은 그녀의 마음을 보시고 그녀의 태를 열어 주셨다.

사무엘은 이새의 아들들 외모를 보고 취하려 했으나 하나님은 그들의 외모가 아니라 마음 중심을 보시고 그들을 거절하셨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거절 당한 다윗을 취하셨다. (삼상 16:7)

1 Samuel 16:7
And Jehovah said to Samuel, Do not look on his appearance, nor to the height of his stature, for I have rejected him. For man does not see what He sees. For man looks for the eyes, but Jehovah looks for the heart.  


그런데 우리는 피부 한 껍질 속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대로 판단하고 거기에다가 성형수술에 화장까지 진하게 하면 완전히 속아 버리고 만다.

삼손이 드릴라에게 그렇게 당했다. 그는 드릴라의 마음을 보지 못한채 그녀의 외모와 그녀가 하는 입에 발린 달콤한 말만 듣고 그녀를 믿고 힘의 비밀을 말해 주었으며 영혼의 깊은 잠에 빠져 있다가 결국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아무 짝에도 소용없는) 눈알도 뽑히고 원수의 연자맷돌이나 돌리는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다.


나는 내 눈에 보여지는 것이나 보여지는 상황만 보고 판단하며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상황이나 현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마음에 있는 것을 듣고 믿음으로 반응하며 살아갈 것인가?

승애 자매는 뉴포트에 있는 한 변호사로부터 배우자 비자 신청 항소를 해도 소용이 없다는 말을 들었지만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남편에게 말씀하신 것과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항소를 진행하고 있다.


만약 우리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대로만 살아간다면 삼손처럼 눈알이 뽑히고 짐승처럼 빙빙 도는 연자맷돌이나 돌리는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고, 야곱처럼 결혼 첫날 밤에 엉뚱하게 레아를 취하고 7년 간을 또 종처럼 섬겨야 하는 비참한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 듣지 않고 살고 믿음으로 반응하며 살지 않는다면 결국은 상황에 갇히고 사람들에게 잡힌 상태로 노예처럼 살다가 영원한 죽음으로 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 묻고 듣고 사는 것을 매일 매 순간 연습해야 한다. 바쁘기 때문에 생각없이 짜여진 틀에 맞춰서 잘 살아가고 있다면 기계나 노예와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비록 낭비 같지만 매일 그 분의 발치에 앉아 마리아처럼 듣고 묻는 삶이 없다면 기초없이 쌓은 건물처럼 멋있게 올라가기는 하겠지만 한 순간 눈에 보이는 것과 손에 잡히는 것 때문에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시 127:1-2)

Psalm 127:1-2
1 If Jehovah does not build the house, they who build it labor in vain; if Jehovah does not keep the city, the watchman stays awake in vain. 2  It is in vain for you to rise early, sit up late, to eat the bread of toils; for so He gives His beloved slee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