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1. 24. Sunday, Genesis 37:19

 

2016. 01. 24. Sunday

Genesis 37:19
And they said, each to his brother, "Behold, this master of dreams is coming."  


사과를 보거나 사과에 대한 말만 들어도 입에 침이 나오는 것은 이미 사과가 무엇이며 어떤 맛을 갖고 있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과가 무엇인지 전혀 모르고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면 아무리 사과를 보여 주고 사과에 대해서 설명을 해도 별 반응이 없을 것이다.

이렇게 내가 사전에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이 있으면 그것에 대해서 다시 보거나 다시 듣게 되었을 때, 아니 비슷하게 생긴 것만 보아도 내 안에서부터 어떤 반응이 나오게 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

그것이 물리적이든지 화학적이든지, 감정적이든지 신체적이든지, 개인적이든지 집단적이든지, 공격적이든지 방어적이든지, 긍정적이든지 부정적이든지, 죽이든지 살리든지 어떤 반응이 반드시 나오게 된다.


나무나 플라스틱은 아무리 강한 자석을 갖고 와도 거기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안에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석을 가까이 하면 자성을 가진 물체가 반응을 하고 끌려 오듯이 우리가 무엇을 보거나 듣게 되면 내 속에 있는 것이 거기에 반응하게 된다.

아담과 하와에게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이 분명히 있었다. "네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 2:17)

그랬기 때문에 지식의 나무를 아무리 쳐다 보고 그 열매를 아무리 만져 보아도 하나님이 하신 말씀에 반응해서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하와가 지식의 나무 열매를 보았을 때 그것이 먹음직 하고 보암직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운 열매로 다가왔고 결국 그녀는 그것을 먹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녀는 뱀이 말한 것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으며 그 뱀의 말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이다.

내 안에 뿌려진 말은 마치 씨앗과 같다. 그리고 밖에서 무엇이든지 거기에 반응할 수 있는 말이나 조건이 주어지면 물리적, 화학적, 감정적, 신체적, 개인적, 집단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아버지의 편애를 받으며 자기들과는 다른 옷을 입고 다니는 것 때문에 이미 미움이 가득했고 그 두 개의 꿈 이야기 때문에 질투까지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때에 요셉이 혼자 오는 것을 본 형들 안에서 미움과 질투의 화학적, 감정적, 집단적, 그리고 공격적인 반응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첫번째 반응이 말(אמר = to say)이었다. 형들은 서로에게 요셉이 누구인지를 말로 일깨우며 그들 마음에 있는 미움과 질투의 창으로 요셉을 보게 한다.

이처럼 반응의 근본을 찾아가 보면 많은 경우 그 시작이 말(word or talk)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하나님도 세상을 말로 창조하셨고 사람을 창조하시기 전에도 서로 말하며 의논하셨다. 그리고 사탄이 사람들을 망치고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게 만들 때도 말로 했다. (창 1:26, 3:1b)

Genesis 1:26
And God said( (אמר), let Us make man in Our image, according to Our likeness; and let them rule over the fish of the sea, and over the birds of the heavens, and over the cattle, and over all the earth, and over all the creepers creeping on the earth.  

Genesis 3:1b
And the serpent said(אמר) to the woman, "Is it true that God has said, You shall not eat from any tree of the garden?"

이와 같이 말은 창조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지만 파괴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아낀다. (전 5:2-3)

Ecclesiastes 5:2-3
2 너는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조급하게 되어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라. 그러므로 네 말수를 거의 없게 할지어다. 3 꿈은 일의 많음으로 인하여 오나니 어리석은 자의 음성도 말이 많음으로 알려지느니라. 2 Do not be hasty with your mouth, and do not let your heart hurry to bring forth a word before God. For God is in Heaven, and you are on earth; on account of this, let your words be few. 3 For the dream comes through the greatness of the task; and the voice of the fool is known by the multitude of words.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를 점령할 때 그들은 먼저 침묵을 배워야 했다. 그리고 7일 간의 침묵 후에 비로소 그 침묵에서 나온 함성으로 여리고 성벽은 무너진다.


요셉은 지혜롭지 못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형들의 잘못을 부모님께 고자질(?) 했고 꿈을 꾸었을 때마다 형들에게 마구 말했으며 부모님께도 마구 말했다.

하지만 22년 뒤 요셉이 형들을 만났을 때에는 자신이 누군지를 드러내지 않았고 형들을 살리기 위한 계획을 은밀하게 진행하며 베냐민이 올 때까지 말을 아끼고 참는다.

그리고 그렇게 참고 참았던 요셉의 말은, 잔이 발견된 베냐민 대신 자기 자신이 요셉의 종이 되어 섬기겠다고 하는 유다의 간청을 듣는 요셉의 마음에 엄청난 감정적인 반응을 일으켜 통곡이 되어 터져 나오면서 온 궁궐에까지 들리게 된다. (창 45:2)

Genesis 45:2
And he wept aloud; and the Egyptians and the house of Pharaoh heard.  

요셉은 "꿈을 꾸는 자"였지 꿈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꿈의 주인(בּעל = master, lord, husband)"은 아니었다. 하지만 형들이 요셉을 꿈의 주인이라고 부르는 것은 냉소적인 반응일 뿐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요셉은 자신이 꾼 꿈을 이루기 위해서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오히려 그 꿈을 말함으로써 자신의 인생을 망치게 된다.

그리고 이렇게 요셉의 인생이 망쳐져 말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노예의 자리에 떨어지고 제대로 자신을 변호도 못한채 억울하게 죄수가 되어 감옥에 갇히면서 그의 꿈은 조금씩 이루어져 간다.


요셉이 자신의 꿈을 말로만 펼치려고 할 때는 요셉이 꿈의 주인처럼 보였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침묵하고 다른 사람의 꿈을 들어주며 그들이 꿈을 펼치도록 도울 때 비로소 하나님이 꿈의 주인으로 드러나게 된다.

요셉이 감옥에서 불려 나와 바로 왕의 꿈을 듣기 전에 그 꿈에 대한 풀이는 자기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말한다. (창 41:16)

Genesis 41:16
요셉이 바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이(꿈의 풀이)는 내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바로에게 평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So Joseph answered Pharaoh, saying, "It is not in me; God will give Pharaoh an answer of peace."


여기서 요셉이 "자기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라고 한 것은 자기가 주인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리고 이 말의 히브리어가 "발라디(בּלעדי = not in, without, except, besides)"라는 복합어로 "실패하다"는 뜻의 "발라(בּלה = to fail)"라는 말과 "지속되다" "영원하다"는 뜻의 "아다(עדה = to pass on, to continue)"라는 말로 구성되어 있다.

즉 "나에게 속한 것이 아니다"는 말은 "나는 계속해서 실패하는 존재"라는 뜻이며 "스스로를 신뢰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닐까?

그러면 나는 무엇의 주인일까? 실패의 주인, 실수의 주인이라고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이것은 포도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내가 그에게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이 아닐까? (요 15:5)

John 15:5
"I am the vine, you are the branches. He who abides in Me, and I in him, bears much fruit; for without Me you can do nothing.

내가 무슨 굉장한 성공을 하고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고 해도 결국 주님 안에서 살지 않는다면 실패한 것이고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솔로몬은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얻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난 뒤 "해 아래서 하는 모든 것이 헛되다(meaningless)"고 고백했다. (전 1:2~3, 14)

Ecclesiastes 1:2-3,14
2 "Meaningless! Meaningless!" says the Teacher. "Utterly meaningless! Everything is meaningless." 3 What does man gain from all his labor at which he toils under the sun?  14 I have seen all the works which are done under the sun; and, behold, all is vanity and striving after wind!  

즉 인간이 해 아래서 하는 모든 것은 성공을 포함해서 결국은 헛된 것이라는 말이다.

그래서 내 안에 매일 매일 그의 말씀으로 심지 않으면 엉뚱한 것에 엉뚱한 모습으로 반응하고 그 공허하고 의미없는 열매를 거두게 될 것이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보자마자 죽일 계획을 세운다. 왜냐하면 그들 안에 미움과 질투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형들을 용서하고(forgive) 잊어버린(forget) 요셉은 22년 뒤에 자기 눈 앞에 나타난 형들을 보자마자 회복(redemption)의 계획을 세운다.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이며 오늘 하루를 살아갈 것인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기 때문에 내 안에 사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것이 맞다.

그래서 내가 육체를 입고 사는 것은 더 이상 내 안에 있는 육체의 요구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해서 나 대신 죽으신 그 분을 위해 사는 것이다.

이것은 노예살이처럼 주인의 명령 때문에 해야하는 억지나 억압이 아니라 연애하는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자신을 기꺼이 상대방에게 내어주고자 하는 자발적인 사랑의 관계에서 나오는 삶이고 행위이다. (갈 2:20)

Galatians 2:20
I have been crucified with Christ, and I live; yet no longer I, but Christ lives in me. And the life I now live in the flesh, I live by faith toward the Son of God, the One loving me and giving Himself over on my behal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