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1. 21. Thursday, Genesis 37:17

 

2016. 01. 21. Thursday

Genesis 37:17
And the man said, "They have departed from here, for I heard them say, 'Let us go to Dothan.'" So Joseph went after his brothers and found them in Dothan.

이스라엘에서 영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모스코바에서 16시간을 기다려 비행기를 갈아 타야 했다. 밤을 지내고 다음날 아침 게이트에 도착했을 때 스크린에 "Departed(떠났음)"라는 글씨가 보였다. 순간 뇌가 멈추고 손발이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정말 어떻게 해야할지를 몰랐다.

이렇게 공항에 도착했는데 비행기를 놓쳤을 때, 기차역에 도착했는데 기차를 놓쳤을 때, 그것도 넉넉하게 시간을 두고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놓치거나 떠나버렸을 때 마음이 어떨까?

그렇게 나를 두고 떠나버린 것이 정말 복(blessing)이었나? 티켓도 있었고 시간도 넉넉했고 모든 것이 완전히 갖추어져 있었는데 비행기나 사람이 나를 두고 떠나버렸다면 얼마나 허무하고 허탈하고 절망적일까?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있어서 정말 복이었다. 하나님은 그 때 내 마음을 새롭게 하셨고 나를 낮추시며 당신의 은혜를 경험시켜 주시면서 당신이 누군지를 더 깊이 알게 하셨다. (러시아에서 나의 실수로 비행기를 놓쳤음에도 불구하고 벌금을 하나도 물지 않고 6시간 뒤에 떠나는 비행기표를 공짜로 받았다.)


내가 거기에 가면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찾지 못한 것이 복이고 은혜이다. 즉 그 형들이 거기에 있다가 떠난 것이 복이다.

만약 요셉이 세겜에서 형들을 만났다면 거기서 바로 죽임을 당했든지, 아니면 이스마엘 상인을 만나지 못했든지 이야기는 아주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이 그 날 밤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것이 복이었다. 만약 그들이 물고기를 많이 잡았다면 그들은 예수님께 귀를 기울이기는 커녕 거들떠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세겜에 도착했으나 형들을 만나지 못한 요셉은 두 가지 갈림길에 놓여 있었다. 즉 자기가 왔던 아버지 집이 있는 헤브론으로 돌아가든지 아니면 그 이름없는 사람의 말을 믿고 도단으로 가는 것이었다.

도단은 세겜에서 북쪽으로 30km 정도 떨어져 있고 걸어서 약 4시간이 걸리는 그렇게 멀지 않은 길이었지만 요셉은 지금까지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는 전혀 새로운 길이었다.

그러나 헤브론으로 돌아가는 길은 3일 이상 걸리는 먼 길이지만 이미 그가 두 번이나 지나온 길이었다. (디나 사건 이후에 야곱의 가족이 세겜을 떠나 벧엘로 갔다가 헤브론에 정착할 때 갔던 길이 이와 비슷한 경로였다.)

만약 요셉이 정신이 제대로 박힌 사람이었다면 아무리 짧은 거리라고 해도 그 이름없는 사람의 말을 듣고 도단으로 가는대신 오히려 모든 것이 보장되어 있고 확실한 헤브론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런데 요셉은 어리석게도 남쪽 헤브론이 아니라 북쪽 도단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왜냐하면 도단에서 형들을 만나리라고 기대했기 때문이다.

즉 요셉은 자기가 왜 세겜까지 왔는지를 알고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목표로 하고 왔던 세겜이라는 장소에 어렵사리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진짜 목적이었던 형들이 없었기 때문에 형들을 찾아 세겜과 헤브론의 한계를 벗어난다.

내가 나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지리적, 제도적, 법적, 신체적, 재정적, 역사적, 문화적, 환경적, 전통적, 인종적, 경험적인 한계에 묶여 있는 것은 내가 이름없는 그 분을 만나지 못했거나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속한 그 한계 때문에 그의 말을 무시하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종종 나는 세겜에 가면 형들을 반드시 만나리라고 믿고 기대하며 왔지만 세겜에서 형들을 만나지 못한 것 때문에 "그 이름없는 그 분"의 말을 듣기보다 실망감과 좌절감, 그리고 나에게 거짓말을 한 아버지께 대한 화를 갖고 따질 자세로 헤브론으로 돌아가는 삶을 살아 간다.


내 인생에 이름없는 분으로 나타나 자신들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믿음의 여정에 도움을 주셨고 오히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신 분들이 있다.

어떤 분은 자신의 두 칸 짜리 전세집 방 하나를 나에게 나누어 주셨고 그 분들은 아이 둘과 함께 나머지 방 하나에 흥부네처럼 네 식구가 옹기종기 사셨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집도 뜬금없이 어떤 분이 나타나 우리를 위해 매매하셨고 비록 적은 액수의 월세를 내고 있지만 우리는 그 은혜로 살고 있으며 7인승 자동차도 어떤 분이 이름없이 보내신 재정이 밑거름이 되어 구입하게 되었다.

그런데 알고 보면 나에게도, 그 분들께도 한결 같이 이름없는 분이신 성령님께서 나타나 말씀하시고 인도하셨다.

내 안에 살고 계신 성령님은 광야에서 방황하고 있는 요셉을 만나 그에게 다음 발걸음을 옮길 방향을 지시한 그 이름없는 사람처럼 내가 인생의 광야에서 헤매고 있을 때 종종 나에게 그렇게 해 오고 계신다.

이번에 승애 자매의 영국 배우자 비자 건에도 성령님께서 말씀하시고 이름없는 사람들을 통해 인도하고 계심을 보고 있다.

성령님은 이름없는 분이시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깊은 곳까지 아시는 분이시기에 내가 혼란 가운데 있거나 방황하고 있을 때 나에게 말씀하시며 나의 발걸음을 정확하게 인도하시는 분이시다. (고전 2:10)

1 Corinthians 2:10
But God has revealed them to us through His Spirit. For the Spirit searches all things, yes, the deep things of God.


그런데 나는 그 이름 없는 그 성령님께 듣기 보다 금방 뭔가 해결이 되고 눈에 보이는 답을 줄 것 같은 이름 있는 사람들을 찾아 다니기에 분주하며 눈치보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잠깐 있다가 아침 안개처럼 사라질 인생을 의지하며 그들의 눈치를 보며 노예처럼 사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진리로 나를 자유케 하셨고 그 진리의 영으로 영원까지 인도해 가시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따르는 것을 오늘도 연습하고 있다.


요셉이 헤브론에서 세겜으로 올 때는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아버지를 신뢰하고 믿음으로 왔다. 하지만 헤브론으로 돌아가는 길은 믿음이 없이도 얼마든지 갈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길은 이미 그가 지나온 길이었고 아버지가 거기 헤브론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헤브론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두 가지 큰 차이가 있다. 하나는 이미 내가 지나온 길이고 경험이 있기 때문에 믿음없이 "상식"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헤브론에 그를 사랑하는 아버지가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를 신뢰하기에 "믿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마치 아버지의 유산을 받아서 타국으로 떠났던 둘째 아들이 모든 재산을 헛되이 낭비한 후 아버지 집으로 다시 돌아갈 때, 그는 아버지의 사랑하는 마음을 알았기 때문에 아버지가 받아줄 것을 믿고 신뢰함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큰 아들은 들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짧은 거리였지만 아버지의 마음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염소 새끼 한 마리도 요구하지 못했고 집에 다시 돌아온 동생을 위한 잔치 소식을 듣고 화를 내며 집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이처럼 믿음이 있으면 아무리 먼 거리라고 해도 다시 돌아갈 수 있고 전혀 가 보지 못한 곳이라고 해도 갈 수 있지만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짧은 거리이고 잘 아는 곳이라고 해도 내면에 있는 거리와 깨어진 엄청난 틈 때문에 갈 수 없다.


도단으로 가는 길은 헤브론에서 온 거리에 비하면 너무나 짧은 거리였지만 요셉이 거기를 가기 위해서는 믿음이 필요했다.

왜냐하면 요셉은 그 길을 한 번도 가 보지 않았고 누군지도 모르는 그 이름없는 사람의 말을 듣고 형들이 거기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가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셉은 그 이름없는 사람의 말을 듣고 헤브론으로 옮기려던 그의 마음을 추스리고 그 발걸음을 돌려 이름없는 그를 신뢰함으로써 도단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요셉은 형들을 도단에서 발견하지만 자기 자신을 거기서 잃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이는 결코 사망의 골짜기를 들어갈 수도 없고 통과해 갈 수는 더더욱 없다.

하지만 함께 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불 속이든 물 속이든 사자의 굴이든 기꺼이 들어갈 것이다.

내일 세 사람의 청년들이 얼음처럼 차가운 웨일즈의 폭포 아래서 세례를 받게 되었다. 특별히 20살의 청년 자매는 겨울의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기쁘게 자신의 삶을 주님께 드렸음을 여러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선포할 것이다.

내가 하는 말을 듣는 사람이 있다. 이름 있는 사람들은 내가 하는 말을 듣지 않지만 이름없는 이들이 나의 말을 듣고 있다.

그러므로 혀를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나의 혀가 살리는 약이 될 수도 있지만 죽이는 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Ecclesiastes 5: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Do not be hasty with your mouth, and do not let your heart hurry to bring forth a word before God. For God is in Heaven, and you are on earth; on account of this, let your words be few.  


그 이름없는 사람은 요셉의 형들이 하는 말을 잘 들었기에 요셉을 도단으로 인도할 수 있었다. 내가 제대로 듣지 못한다면 나는 상식과 경험을 갖고 나 자신과 다른 이들을 엉뚱한 곳으로 인도할지도 모른다.


Isaiah 55:1-3
1 Ho, everyone who thirsts, come to the water; and he who has no silver, come buy grain and eat. Yes, come buy grain, wine and milk without silver and with no price. 2 Why do you weigh out silver for that which is not bread, and your labor for what never satisfies? Listen carefully to Me and eat the good; and let your soul delight itself in fatness. 3 Bend your ear and come to Me; hear, and your soul shall live; and I will cut a covenant everlasting with you, the faithful mercies of Davi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