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1. 22. Friday, Genesis 37:18

 

2016. 01. 22. Friday

Genesis 37:18
And they saw him from a distance. And before he came near to them, they plotted against him, to kill him.  


나무나 플라스틱은 아무리 강한 자석을 갖고 와도 거기에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안에 자성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자석을 가까이 하면 자성을 가진 물체가 반응을 하고 끌려 오듯이 우리가 무엇을 보게 되면 내 속에 있는 것이 거기에 반응하게 된다.

이담과 하와가 지식의 나무 열매를 보았을 때 그것이 먹음직 하고 보암직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러운 열매로 다가왔던 것은 이미 그들 안에 뱀이 뿌린 말들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보자마자 죽일 계획을 세운 것은 그들 안에 미움과 질투가 있었기 때문이며, 이미 형들을 용서하고 잊어버린 요셉은 22년 뒤에 자기 눈 앞에 나타난 형들을 보자마자 회복(redeeming)의 계획을 세운다.


요셉의 형들은 멀리 떨어진 거리였지만 요셉이 오는 것을 보고 그가 요셉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챘다. 그리고 요셉이 가까이 오기도 전에 그들은 요셉을 죽이기로 계략을 세운다.

이것은 그들이 17년 동안 요셉과 함께 자라왔기 때문에 요셉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도 그를 알아보고 그들 안에서 반응하는 미움과 질투 때문에 그를 죽일 계략을 꾸민 것이다.

그런데 이삭은 아주 가까이 있었지만 눈이 멀었기 때문에 야곱을 야곱으로 알아보지 못했고 야곱을 에서라고 결론 짓고 야곱에게 축복한다.

야곱도 사랑(?)에 눈이 멀었기 때문에 신혼 첫 날 한 방에서 잠자리를 같이하는 여인이 레아인 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라헬을 아내로 취하기 위해 7년을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하며 기다려 온 야곱의 마음이 이해가 된다. 그리고 아마 그 방은 불이 끄져 있었거나 희미한 불 빛이라 잘 알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곱이 라헬을 지난 7년 동안 사랑하고 알아 왔다면 말이나 숨소리, 냄새만으로도 그녀가 라헬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눈치챌 수 있지 않았을까?

이삭은 야곱이 에서처럼 염소털로 꾸미고 염소 요리를 갖고 들어 와서 축복을 받고자 했을 때 그의 목소리를 듣고 그가 에서가 아니라 야곱이라는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야곱이 입고 있었던 에서의 옷에서 나는 냄새와 손과 목덜미에 붙인 염소털, 그리고 식기 전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 때문에 이삭은 야곱이 에서라고 대충 결론 내리고 야곱에게 축복한다.

22년 전,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도 알아차리고 죽일 계획을 세웠지만 22년이 지난 뒤 그들은 눈 앞에 있는 요셉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들은 통역을 통해서 했지만 꽤 많은 대화를 했고, 아마도 내내 고개를 떨구고 있었겠지만 대화 중에 잠깐이라도 고개를 들고 요셉을 쳐다보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명의 형들은 아무도 그가 요셉이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집트에 노예로 팔려간 요셉이 총리가 되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내 마음이나 생각 가운데 이미 결정한 어떤 것이 있으면 옆에서 누가 뭐라고 해도 그것이 들리지도 않고 눈 앞에 빤히 있어도 보이지 않고 그냥 지나치게 된다. (내 안에 플라스틱이 있으면 그것은 결코 자석에 반응하지 않는다.)

이삭도 야곱이 에서로 가장하고 자기 앞에 나타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고 야곱도 레아가 그 첫 날 밤 신혼방에 라헬대신 기다리고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이처럼 내가 생각 속에서 이미 무언가를 결정해 버리게 되면 그가 야곱의 목소리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점검하지 않고 에서로 받아들이고 입맛 당기는 고기 요리에 손을 댄다.
그리고 라헬이 아니라 레아임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대화나 질문없이 조급하게 육체의 욕구를 따라 그녀와 달콤한(?) 잠자리에 빠져 버린다.

지난 모든 것들을 용서하고 잊고 살고 있던 요셉도 자기 눈 앞에 형들이 이렇게 나타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을 보자마자 요셉은 그들을 단번에 알아 보았다. 왜냐하면 그동안 22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형들의 주름이 늘고 흰머리가 생긴 것 외에는 그들의 말씨나 태도는 별로 변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형들이 요셉을 알아보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난 22년 동안 요셉은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다.

요셉은 겉으로 이집트 사람의 모습을 하고 총리의 자리라는 높은 관직에 오르는 외적인 변화도 있었지만, 그를 죽이려 했고 노예로 팔았던 그의 형들과 강간미수의 누명을 씌운 보디발의 아내와 보디발, 그리고 자기를 2년 동안 완전히 잊고 외면했던 술관원장을 용서하고 기억에서 조차 지워버리는 놀라운 내면의 변화가 있었다. (창 42:7)

Genesis 42:7
Joseph saw his brothers and recognized them, but he acted as a stranger to them and spoke roughly to them.


요셉이 도단에 나타났을 때 그가 요셉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형들은 요셉을 "죽일 계략"을 꾸미지만 22년 뒤 형들을 알아본 요셉은 그의 목소리를 바꾸고 질문을 하면서 그들을 "살릴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요셉이 형들을 살리기 위해 꾸민 계획은 마치 그들을 죽이려는 계략 같았다.

즉 요셉의 계략을 형들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 억울했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순히 양식을 사러 온 것 뿐인데 정탐꾼으로 몰려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시므온은 마지막까지 볼모로 잡혀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결국 그들이 과거에 한 짓 때문에 생긴 것이며 과거에 있었던 것을 구속(redeem)하고 그들을 자유케 하기 위해 요셉은 이 계략을 꾸미고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즉 형들은 요셉을 죽이기 위해 계략을 꾸몄으나 요셉은 형들을 살리기 위해 계략을 꾸몄다.

하지만 하나님은 형들의 계략을 틀어서 당신의 영원한 목적을 이 땅에 이루는데 사용하셨고 요셉의 계략을 통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드러내시며 그 분의 십자가 사랑과 용서를 드러내셨다.

하나님은 무화과 잎으로 가리고 나무 사이에 숨어 있는 아담과 하와를 보시고 그들을 살리는 계획을 세우셨다. 그런데 그 계획은 당신의 아들을 죽이는 계획이셨다. 이처럼 하나님은 나(우리)를 살리시려고 당신을 죽이셨다.

나는 오늘 나에게 보이는 것 때문에 살리는 계획을 세울 것인가? 아니면 죽이는 계략을 꾸밀 것인가?  


오늘 20살의 청년 한 명과 30대의 청년 두 사람이 한 겨울 웨일즈의 의미 있는 폭포 아래서 세례를 받게 되었다.

하나님의 살리는 계획이 이들 가운데 풀어지기를 기도하며 이들을 통해 누구도 생각지 못했던 예수님의 아름다우심과 더 깊은 성품, 그리고 그의 능력이 나타나 사람들이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을 통해 예수님을 보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