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1. 19. Tuesday, Genesis 37:15

 

2016. 01. 19. Tuesday

Genesis 37:15
Now a certain man found him, and there he was, wandering in the field. And the man asked him, saying, "What are you seeking?"


요셉은 그 전에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께 보고(report)한 적이 있었고 이번에도 세겜에 가서 형들을 살펴보고 그들의 소식을 아버지께 보고할 참이었다.

그리고 요셉은 두 번이나 자기가 꾼 꿈을 형들과 부모님께 철없이 자랑하듯이 말로 늘어 놓았던 인물이다.

이처럼 요셉은 아버지께 형들의 소식(words)을 가져왔던 아들이었고 이번에도 야곱이 요셉을 세겜으로 보내면서 형들의 소식(words)을 갖고 오라고 한다.

그런데 실제로는 요셉이 형들의 소식을 갖고 온 것이 아니라 형들이 요셉의 소식을 갖고 왔고 요셉은 가나안 땅에서 말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그동안 가나안에서 살았던 요셉의 특징을 "아버지의 편애 속에 말(words)로 살았던 사람"이라고 하면 너무 심한 평가일까?

그런데 이렇게 말로 살다가 사라진 요셉은 13년 동안 이집트에서 노예와 죄수로 살면서 말없이 몸(삶)으로 사는 것을 배운다.

말이 많아지면 삶이 적어지고 삶이 있으면 말이 적어진다. 즉 삶이 없으면 말로라도 떼워야 하고 삶이 있으면 굳이 말이 필요없다.

아버지 이스라엘(야곱)의 말을 듣고 세겜에 온 요셉은 이미 도단으로 가버린 형들을 찾을 수 없었고 들판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그때 이름없는 어떤 사람이 그 들판에서 요셉을 발견하고 요셉이 무엇을 찾고 있는지를 묻는다.

"What are you seeking?"

우리는 이미 짜여진 틀 속에서 부지런히 문제없이 잘(?)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질문없이 살아갈 때가 많다.

하지만 지금 세겜에 도착한 요셉은 거기서 짐승을 치고 있어야 할 형들이 없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채 방황하고 있었다.


약 3년 전 웨일즈에 와서 작년 4월 17일 웨일즈 형제와 합법적으로 결혼하고 10개월째 살고 있는 승애 자매의 배우자 비자가 거절되면서 하루 이틀 정도를 마치 요셉처럼 방황했었다.

우리는 승애 자매의 배우자 비자 신청 조건에 엄청난 액수의 재정증명 서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재정이 없기에 그 서류없이, 마치 에스더가 3일 금식하면서 죽음을 각오하고 왕의 부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왕궁에 들어갔던 것처럼 12월 7일에 서류를 영국 정부에 보냈다. 그리고 6주만에 거절 통보를 받은 것이다.


아버지 야곱의 말을 듣고 세겜에 왔으나 형들을 만나지 못한채 들판에서 방황하던 요셉을 만난 이 이름없는 한 사람이 요셉이 무엇을 찾는지를 물었고 요셉의 형들이 "도단으로 가자"고 하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나를 비롯해서 거의 모든 사람들은 문제에 봉착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름있는 유명한 사람들을 찾아 다닌다. 그리고 그 때문에 문제들이 해결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곧잘 이름없는 사람들을 찾으시고 이름없는 사람들을 부르셔서 그들을 통해 당신을 드러내시고 그 문제를 풀어가신다.

즉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을 목숨을 걸고 믿음으로 받아줄 여인을 찾던 중 가난하고 보잘 것 없는 나사렛의 시골뜨기 마리아를 찾아 오셨고, 집안 식구들로부터도 거절받고 들판에서 양을 치며 사무엘이 기름붓기 위해 이새의 집에 왔을 때 그 명단에도 없었던 베들레헴의 목동 다윗을 선택해서 당신의 마음에 있는 것을 이 땅에 풀어 내셨다.

어제 이름없는 한 사람을 만나 승애 자매의 배우자 비자에 대한 얘기를 묻고 들으면서 정부에 항소(appeal)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일단 정부에서 항소할 수 있다고 한 것은 그들이 준 기회이고 어쩌면 이것이 아하수에로 왕이 금홀을 에스더에게 내어민 것과 같은 싸인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꽤 많은 경우 정부는 아예 항소할 기회를 주지 않고 14일 이내에 출국을 명령하기 때문이다.

"What are you seeking?"

우리가 정말로 찾고 있는 것은 엄청난 액수의 돈이나 비자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며 믿음과 사랑으로 우리보다 앞서 가신 예수님이시다.


요셉은 육신의 아버지 이스라엘(야곱)의 말을 듣고 세겜까지 갔고 세겜에서는 이름없는 한 사람의 말을 통해서 도단까지 간다. 그리고 도단에서는 요셉 자신의 부르짖음을 들은 이스마엘(ישׁמעאל = God will hear) 상인들에 의해 이집트까지 가게 된다.

(궁극적으로는 17세 소년으로 아버지 집에서 쫓겨나 광야에서 부르짖고 있었던 이스마엘의 소리를 들은 하나님이 하갈의 눈을 열어 우물을 보게 했듯이, 17세 소년 요셉이 마른 웅덩이 안에서 부르짖는 그 절박한 소리를 들은 하나님이 그 이스마엘의 후손인 상인들을 보내어 같은 심정으로 요셉을 구원해 준 것은 아닐까?)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세겜까지 왔다가 내가 찾는 것이 거기에 없다는 것 때문에 더 찾지 않거나 거기서 만난 이름모를 사람이 하는 말을 무시하고 육신의 아버지가 있는 헤브론으로 곧장 다시 돌아가 버리지는 않는가?

요셉은 육신의 아버지 야곱을 신뢰함으로 세겜까지 갔고 세겜에서 만나게 된 이름없는 한 사람을 신뢰함으로 도단까지 가게 된다.

그리고 도단에서는 자신의 말에 전혀 귀기울이지 않는 형들로 인해 죽음을 직면하지만 그의 부르짖음을 듣고 하나님이 보낸 이스마엘 사람들이 그를 구원해서 그의 의지나 바램과는 전혀 다른 이집트 땅으로 데리고 간다.

Matthew 26:39
He went a little farther and fell on His face, and prayed, saying, "O My Father, if it is possible, let this cup pass from Me; nevertheless, not as I will, but as You will."
John 21:18
"Most assuredly, I say to you, when you were younger, you girded yourself and walked where you wished; but when you are old, you will stretch out your hands, and another will gird you and carry you where you do not wish."


나는 육신의 아버지 야곱의 그늘에서 편하게 살다가 헤브론과 세겜만을 오고 가며 인생을 마칠 것인가?

나는 유명한 사람들을 찾아 다니며 도움을 구하고 살 것인가? 아니면 광야에서 이름없이 나의 다음 여정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도움만을 바라고 살아갈 것인가?

나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머물기 위해 애를 쓸 것인가? 아니면 가나안을 벗어나 약속의 땅이 아닌 이집트로 기꺼이 갈 것인가?

나는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아들로 특별한 옷을 입고 가나안 헤브론에 눌러 살 것인가? 아니면 노예처럼 비참하게 되더라도 나의 데스티니를 찾아 떠나 갈 것인가?  

나는 정말로 절박한 가운데 하나님을 구하며 살고 있는가? 아니면 믿음의 도전없이 안일하게 살고 있지는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