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1. 15. Friday, Genesis 37:12

 

2016. 01. 15. Friday

Genesis 37:12
Then his brothers went to feed their father's flock in Shechem.

범죄자의 심리는 자신이 범행을 저질렀던 곳을 다시 찾아가는 경향이 있다. 즉 완전범죄를 위해 모든 것이 제대로 되어 있는지 확인하려고 그렇게 한다고 한다. 그래서 사건 현장과 그 길목을 잘 살피고 있으면 앉아서 범죄자를 잡을 수도 있다.

어쩌면 야곱의 아들들은 몇 년 전에 있었던 그 사건의 현장을 가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가서 뭔가를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야곱이 그 상수리 나무 아래 묻어버린 우상들과 금귀걸이들을 다시 찾으려고 간 것은 아닐까? (창 35:4)

Genesis 35:4
So they gave Jacob all the foreign gods which were in their hands, and the earrings which were in their ears; and Jacob hid them under the terebinth tree which was by Shechem.


야곱이 요셉에게 형들의 안부를 알아보라고 세겜으로 보낸 곳이 헤브론 골짜기였다. 이로 미루어 볼 때, 그 당시 야곱은 헤브론에서 살고 있었던 것 같다. (창 37:14)

그렇다면 왜 야곱의 아들들은 헤브론에서 세겜까지 적어도 걸어서 3일 이상 걸리는 그 먼 거리를 가서 양을 치고 있었던 것일까? 물론 그들이 양을 치며 이동하다 보니까 어느새 세겜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그런데 세겜은 디나의 강간과 세겜성 사람들의 몰살 사건이 있었던 곳이 아닌가! 그리고 이 때문에 주변에 있던 다른 종족들이 야곱의 집안을 해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공포를 보내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했던 곳이다.

아마 나였다면 그 먼 거리를 가지도 않았겠지만 무엇보다 디나의 가슴 아픈 기억이 있고 아직도 위험할 수 있는 그 지역을 의도적으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야곱의 아들들은 양을 치며 세겜(Shchem)까지 갔고 도단(Dothan)이라는 곳까지 계속 이동해 간다.

그러므로 그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양을 치는 것이었지 세겜 방문은 아니지 않았을까? 즉 그들은 단순히 풀이 많았던 세겜을 기억하고 세겜을 목적지로 이동해 간 것일 수 있다.  

마치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면서 목초지를 따라 가다 보니까 시내산까지 간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결국 나에게 맡겨진 양들의 필요를 채우며 가다 보면 끄지지 않고 불타는 가시떨기 나무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끄지지 않는 불(fire)만 찾아 다니는 사람은 자기에게 맡겨진 일상을 등한히 하고 양들을 팽개치고 불(fire)만 찾아 다닐지도 모른다.

믿는 자들에게는 표적이 따라 온다고 했다. 하지만 믿음이 없기에 표적만 좇아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믿음으로 살아갈 수 없다. 왜냐하면 표적이 없으면 믿지 못하기 때문이다. (막 16:17-18)

Mark 16:17-18
17 "And these signs will follow those who believe: In My name they will cast out demons; they will speak with new tongues; 18 "they will take up serpents; and if they drink anything deadly, it will by no means hurt them; they will lay hands on the sick, and they will recover."

이처럼 일상을 등한히 하고 늘 뭔가 새로운 집회나 모임만 찾아 다니며 살아서도 안되지만 일상에 빠져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정신없이 살아서도 안된다.

내가 그렇게 살지 않으려면 주야로 그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 그러면 때와 시절을 좇아 열매 맺는 삶을 살게 된다. (수 1:8, 시 1:2-3)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고 그 생명은 정체되어 있지 않으며 우리의 내면에서부터 매일 새로운 도전과 변화로 우리를 이끌어 가기 때문이다.

Psalm 1:2-3
2 But his delight is in the law of the LORD, And in His law he meditates day and night. 3 He shall be like a tree Planted by the rivers of water, That brings forth its fruit in its season, Whose leaf also shall not wither; And whatever he does shall prosper.


우리는 충분한 정보와 지식이 있으면 불편없이 하루 하루를 부지런히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생명력 있게 살아가는 것과 궁극적인 삶의 변화는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과 계시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그리고 이렇게 살아 있고 운동력 있으며 좌우에 날선 검 같은 말씀은 내가 부지런히 책을 보고 인터넷을 뒤진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분 발치에 앉아 쉬며 듣는 것을 통해 주어진다. (히 4:11-12)

Hebrews 4:12
11 Let us therefore be diligent to enter that rest, lest anyone fall according to the same example of disobedience. 12 For the word of God is living and powerful, and sharper than any two-edged sword, piercing even to the division of soul and spirit, and of joints and marrow, and is a discerner of the thoughts and intents of the heart.

세겜은 뭔가 새로운 일이 시작되는 곳이 맞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나 실망과 절망을 통해서 시작된다.

이러한 실망과 절망이 없다면 우리는 언제나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안정된 테두리 안에서 그 수준을 유지하며 살아가려 할 것이다.


야곱도 밧단아람에서 장인의 양을 돌보았고 야곱의 아들들은 아버지의 양을 쳤으며 모세도 장인의 양을 쳤고 다윗도 아버지의 양을 쳤다.

하나님은 이들이 그들의 아버지나 장인의 양을 치는 과정을 통해 그들을 준비하셨고 그 과정이 끝나면서 그들에게 당신의 양, 당신의 백성을 맡기셨다.

이처럼 내가 남의 양을 치는 일에 등한히 하면 나에게 주어진 나의 양을 치는 것도 제대로 못하게 될 뿐 아니라 하나님은 당신의 양을 나에게 맡길 수 없을 것이다.


모세는 이집트의 왕자였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도망자가 되어 양이나 치고 처가살이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었으니, 날마다 술이나 마시며 신세타령만 하고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모세는 장인의 양을 치다가 하나님의 산 호렙까지 가게 되고 거기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으며 하나님처럼 되어 바로 왕 앞에 나타난다.

이렇게 내가 처한 상황이나 감정이 어떠하든지 간에 나에게 주어진 일상에 충실하게 살아가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가게 되고 상상치도 못한 분을 만나 상상도 할 수도 없던 존재가 된다.

만약 요셉이 그 비참한 상황과 감정 때문에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제대로 듣고 순종하며 살지 않았다면, 그가 억울함 때문에 감옥에서 죄수로서 제대로 듣고 침묵 가운데 살지 않았다면 요셉은 이집트 언어도 배우지 못했을 것이고 집안 행정이나 왕궁에서 돌아가는 것은 전혀 모른채 슬픔 속에 살다가 비참한 인생을 마쳤을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이해가 되지 않아도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나의 것이 아니라고 해도, 나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해야 한다.

비록 억울하게 이런 상황에 처했고 억울하게 노예처럼 살고 있고 죄수로 취급을 받고 있다고 해도 탈출과 복수만을 생각하기 보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듣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자.


 
요셉은 늘 다른 형제들과 함께 양을 치고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그가 팔려갔던 17세 때에도 여전히 그는 형제들과 함께 양을 치고 있었다. (창 37:2)

Genesis 37:2
Joseph, being seventeen years old, was feeding the flock with his brothers.

그런데 형제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고 있었던 그 때에는 왜 그가 다른 형제들과 함께 양을 치지 않고 형제들과 따로 떨어져 아버지와 함께 헤브론에 있었을까?

아버지와 함께 있게 한 이유는 형들에게 보내기 위함이었고 그 형들에게 잡혀 죽거나 노예로 팔려가게 하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이 그랬다. 그는 늘 아버지와 함께 계셨다. 하지만 그는 이 땅에 죄로 신음하고 있는 형제들에게 보내졌고 질투하는 그들에 의해 은 30개에 팔렸고 결국은 십자가 죽음에 던져진다.

내가 지금 다른 형제들과 떨어져 아버지와 함께 있다는 것은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날 전조는 아닐까?

늘 형제들과 함께 있고 사람들 틈에서만 살아가며 아버지와 함께 있는 특별한 시간이 없다면 아버지와 떨어져 있는 그 노예 살이와 죽음과 같은 감옥의 시간을 이겨 나갈 수 없을 것이다.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은 나를 위한 시간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내가 어디론가 누군가에게 보내어질 그 시간, 앞으로 겪게될 그 고난의 시간을 위한 것이다.  

요셉의 형들은 짐승들은 제대로 돌보고 잘 먹였는지 모르지만 자기 자신들의 내면은 제대로 돌보지 못했고 자기 동생과의 관계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

어떤 사람들은 사역(일)은 잘 하지만 자기 자신과 주변에 있는 가족이나 동역자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서 소진하거나 관계가 깨어지기도 하며 하나님 나라를 무너뜨리는데 톡톡히 기여하기도 한다.

나는 나 자신과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제대로 돌보고 챙기는가? 아니면 사역에 바빠서 정신없이 분주하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 즉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쉬지 못한다.

그리고 쉬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열심히 일은 하겠지만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주변 사람들이 누군지도 모르며 하나님이 누군지도 모른채 무감각한 기계처럼 살거나 노예처럼 살게 될 것이다.

Hebrews 4:10-11
10 그의 안식에 들어간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 일에서 쉬신 것같이 그도 자기 일에서 쉬었느니라. 11 그러므로 우리가 그 안식에 들어가도록 힘써야 하리니 이는 아무도 똑같은 믿음 없음의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10 For he who has entered His rest has himself also ceased from his works as God did from His. 11 Let us therefore be diligent to enter that rest, lest anyone fall according to the same example of disobedi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