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1. 11. Monday, Genesis 37:8

 

2016. 01. 11. Monday

Genesis 37:8
And his brothers said to him, Shall you indeed reign over us, or shall you really rule over us? And they hated him still more because of his dreams, and because of his words.  

야곱은 자기가 꾼 볏단에 대한 꿈을 그의 형제들에게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 꿈이 무슨 꿈인지를 금방 이해하고 풀이 한다.

물론 그들은 요셉의 꿈을 달가와 하지 않았고 그 때문에 그를 더욱더 미워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형제들의 해석은 너무나 쉬웠고 정확했다.

다시 말하자면 대부분의 꿈은 해석이 필요하지만 요셉의 꿈은 특별한 해석이 필요없는 꿈이었다.

이렇게 어떤 꿈은 굳이 해석이 필요없다. 그러나 어떤 꿈은 해석이 없으면 전혀 그 의미를 알 수 없다.

이집트의 바로 왕이 꾼 꿈이 그랬다. 왕이 모든 박사들과 술사들을 불러 모았지만 아무도 그 왕의 꿈을 풀이하지 못했다.

이렇게 꿈을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바로 왕이나 주변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감옥에 갇혀 있는 요셉에게는 감옥에서 나갈 수 있는 놀라운 기회였다.

즉 왕과 모든 대신들은 이 해석이 안되는 꿈 안에 갇혀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지만 요셉은 이 해석이 안되는 꿈 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던 그의 삶이 풀리게 된다.

이처럼 우리에게 뭔가가 막혀 있고 풀리지 않는다는 말은 그것을 풀어줄 누군가가 있으며 그 풀리지 않는 것이 결국은 그 사람의 갇혀 있고 묶여 있는 인생을 풀어 줄 것이라는 말이다.

특별히 나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꿈이 풀리지 않고 막혀 있거나 내가 그 때문에 잡혀 있으며 갇혀 있다는 것은 멀지 않은 곳에 그것을 풀어줄 누군가가 갇혀 있다는 말이다.


요셉은 쉽게 풀이 되는 꿈 때문에 노예로 팔려 가서 결국은 감옥에 갇히게 되었고, 바로 왕은 쉽게 풀이 되지 않는 꿈 때문에 번민하고 거기에 잡혀 있었다.


하나님께서 더포지에 대한 비전(꿈)을 주시지 않았다면 나는 영국 장기 비자에 대한 것을 전혀 신경쓰지 않아도 되고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무너진 대장간을 다시 세우고 영적 대장장이들을 일으키라!"(삼상 13: 19-22)는 꿈과 비전을 주셨기에, 나는 마치 바로 왕처럼 이것을 어떻게 풀이 하고 풀어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런데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고 그것을 적용해 줄 사람은 먼 곳에 있지 않았다. 단지 바로 왕과 요셉을 다 알고 있는 술관원장의 기억만 회복되고 그가 요셉을 추천하면 문제는 (쉽게) 풀리게 된다.

하지만 이것은 그렇게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술관원장은 만 2년 전에 요셉이 자기 꿈을 풀이해 주면서 자기를 잊지 말고 꼭 기억하고 감옥에서 풀어달라고 신신 당부를 했지만 그것을 완전히 잊어 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술관원장이 요셉을 왕에게 추천해서 그가 감옥에서 나오게 된다면 술관원장의 체면과 자존심, 그의 인격은 크게 손상을 입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왕이 번민하고 있고 이집트의 운명이 걸린 것일지도 모르는 중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자존심과 체면 때문에 요셉을 추천하지 않는다면, 나는 나의 자존심과 체면은 지키겠지만 7년 흉년 때에 나의 목숨은 물론 결국은 이집트 왕국까지 잃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자존심과 체면을 내려 놓고 히브리 죄수인 요셉에게 용서를 구하고 그를 바로 왕에게 추천해야 한다.

이집트 사람들의 관점에서 볼 때 요셉은 감히 왕 앞에 나아갈 수도 없는 히브리 노예였고 죄수로 감옥에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술관원장이 자신의 체면이나 자존심을 다 내려 놓고 자신을 낮추게 되었을 때 요셉이 왕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고 왕의 고민이 풀리고 이집트의 국가적인 문제가 풀리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이 풀어지게 되었다.

믈론 요셉이 나로 인해 감옥에 갇힌 것은 아니지만 감옥에서 나를 기다리는 요셉이 있는지 모른다.

만약 내가 하질 것 없는 나의 체면이나 전통, 나의 성격이나 자존심을 내려 놓는다면 히브리 노예 같은 보잘 것 없어 보이는 누군가가 풀려나고 그로 인해 왕의 고민이 풀리며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과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풀어지게 될 것이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꾼 꿈을 바르게 해석은 했으나 그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들은 그 꿈 때문에 요셉을 더욱더 미워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꿈의 해석처럼 요셉의 다스림을 받기는 커녕 오히려 정반대로 요셉을 잡아 죽이려 했고 결국에는 그들의 결정대로 요셉을 노예로 팔아 버린다.

이것은 결국 그들이 형이라는 나이와 자존심, 그리고 아버지의 사랑을 더 받고 있는 요셉에 대한 질투와 미움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만약 그들이 먼저 이 땅에 태어난 형들이고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더 받고 있지만 자기 자신을 먼저 낮추고 그 꿈처럼 행동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내가 상대방과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그 꿈의 해석이나 적용이 달라지게 된다.


내가 이런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들었다면 나는 형으로서 이것을 쉽게 받아 들일 수 있을까? 나의 동생이나 후배, 아니면 제자가 나를 다스리게 된다고 할 때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이게 될까?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사울이 예수님의 사도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그리고 가롯 유다의 자리가 비었음을 알고 제비를 통해 뽑자고 했던 베드로와 그렇게 제비를 통해 뽑혀서 사도로 활동하고 있었던 맛디아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기꺼이 위임하셨다. 당신의 이름과 하나님의 왕국의 운명이 달린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에 대한 중차대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신뢰하고 이 영원을 맡긴 것이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하루도, 일 주일도, 한 달도, 일 년도 맡기지 못한다면 어떻게 남은 삶을 맡기며 영원을 맡길 수 있을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했고 보혜사 성령님을 신뢰했으며 당신의 제자들을 신뢰했다.

나도 나의 형제들과 동생들을 신뢰하고 무엇보다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하기에 그들의 다스림 아래 기꺼이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

결국에는 나를 비롯해 모든 무릎이 그 분 앞에 꿇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