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30. Wednesday, Genesis 36:41

 2015. 12. 30. Wednesday

Genesis 36:41
(40b Chief Timnah, Chief Alvah, Chief Jetheth), 41 Chief Aholibamah, Chief Elah, Chief Pinon,

세일의 후손들 호리 족속들의 이름이 기록되기 이전에 세 명의 아내로부터 태어난 14명의 에서의 족장들의 이름이 나온다.

족장 데만, 족장 오말, 족장 스보, 족장 그나스, 족장 고라, 족장 가담, 족장 아말렉, 족장 나핫, 족장 세라, 족장 삼마, 족장 미사, 족장 여우스, 족장 얄람, 족장 고라(Chief Teman, Chief Omar, Chief Zepho, Chief Kenaz, Chief Korah, Chief Gatam, Chief Amalek, Chief Nahath, Chief Zerah, Chief Shammah, Chief Mizzah, Chief Jeush, Chief Jaalam, and Chief Korah.) 등 14 명이다.

그리고 에돔 땅을 다스리던 왕들의 기록이 사라지고 난 뒤 11 명의 에서의 족장들 이름이 다시 기록되어 있다.

족장 딤나, 족장 알와, 족장 여뎃, 족장 오홀리바마, 족장 엘라, 족장 비논, 족장 그나스, 족장 데만, 족장 밉살, 족장 막디엘, 족장 이람(Chief Timnah, Chief Alvah, Chief Jetheth, Chief Aholibamah, Chief Elah, Chief Pinon, Chief Kenaz, Chief Teman, Chief Mibzar, Chief Magdiel, and Chief Iram.) 등 11 명이다.
 

그런데 이들 에돔 족장들의 이름을 자세히 보면 데만과 그나스, 그리고 오홀리바마라는 이름은 앞의 족보에도 나왔고 뒤에 언급된 족장의 이름에도 나온다.

하지만 이들은 이름만 같을 뿐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특별히 앞의 족보에 등장했던 오홀리바마는 에서의 부인이었고 여기에 등장하는 오홀리바마는 에서의 후손으로 남자이며 족장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임에 틀림없다.


이렇게 같은 이름은 우리에게 혼란을 주고 우리를 착각하게 한다.

하지만 우리가 그 "역사적 배경"과 "시간적 배경"을 알고 "관계적 배경"을 안다면 비록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고 해도 이들이 전혀 다른 사람임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배경을 모르고 이름만 본다면 남자를 여자로 오해할 수도 있고 세대가 뒤섞여 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것 때문에 짜증이 나기도 하고 이러한 성경을 기록케 한 하나님에 대해서도 혼란과 의심과 불신이 생길 수 있다.  


내가 처음 성경을 읽기 시작했을 때 성경에 나오는 "아나니아(חנניה, Ananias)"라는 이름을 보며 그랬다.

내가 아는 아나니아는 땅을 판 돈의 일부를 숨기고 베드로에게 거짓말함으로써 죽음을 자초했던 삽비라의 남편이다. (행 5:1)

그런데 꼭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아나니아가 두 사람이 더 있었다.

한 사람은 다마스커스에 살던 예수님의 제자로서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체포하기 위해 오던 사울이 하늘 위로부터 오는 빛을 보고 3일 동안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한 채 다마스커스에서 금식하고 있을 때 찾아가 기도하고 그의 눈을 다시 보게 해 준 사람이다. (행 9:10)

그리고 또 다른 아나니아는 바울 때의 대제사장으로서 체포된 바울을 향해 입을 치라고 명령했던 사람이다. (행 23:2)

Acts 5:1
But a certain man named Ananias, with Sapphira his wife, sold a possession.

Acts 9:10
Now there was a certain disciple at Damascus named Ananias; and to him the Lord said in a vision, "Ananias." And he said, "Here I am, Lord."

Acts 23:2
And the high priest Ananias commanded those who stood by him to strike him on the mouth.

이들의 이름은 영어나 한국어, 그리고 히브리어 표기도 꼭 같다. 그래서 나는 누가 누군지 헷갈렸다. 특히 바울에게 기도해 준 아나니아와 대제사장 아나니아가 헷갈렸다.

하지만 그들은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이고 한 사람은 예루살렘에 살던 대제사장으로서 예수님을 죽이는데 앞장 섰을 것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을 핍박하고 있었지만, 다른 한 사람은 다마스커스에 살던 예수님의 제자로서 자신을 핍박하고 죽이러 오던 사울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가서 기도해 주었던 사람이었다.

이처럼 이름만 같다고 같은 사람이 아니며 오히려 정반대의 사람일 수 있다. 그러므로 그 마음이나 생각, 삶이나 배경을 모르고 이름만 보고 판단했다가는 이름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맞이할 수 있다.


"아나니아(חנניה = God has favoured)"는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다"는 뜻이다. 그런데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삽비라의 남편 아나니아와 사도행전 23장에 나오는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 같지 않고 저주를 자청한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들은 돈 얼마 때문에 눈이 멀고 마음이 어두워져 하나님의 마음도 모르고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도 모른채 자신의 목숨을 잃어 버렸고 자신의 종교적인 전통과 직위 때문에 눈이 가리워지고 마음이 굳어져서 메시아와 복음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꼭 같은 이름을 갖고 있지만 그 마음과 삶의 배경을 들어가 보면 전혀 다른 사람일 수 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삽비라의 남편 아나니아처럼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 위해 위장된 헌신과 봉사를 하며 거짓말 하고 사람들을 속이며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 당시 베드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아나니아가 갖고 온 돈을 보며 그를 칭찬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베드로는 성령으로 아나니아의 마음에 있는 거짓을 보았다. 사람들은 속일 수 있지만 하나님의 성령은 속일 수 없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대제사장 아나니아처럼 잘 조직된 기독교의 전통 속에서 장로나 권사, 목사가 되고 큰 교회를 이루고 총회장의 자리에 올라 존경받고 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모른채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을 핍박하고 하나님 나라를 저항하며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름만 같다고 같은 사람이 아니다. 이름만 그리스도인이라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아니다.

매일 매일 나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사는 사람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은 갖고 있지만 그리스도를 따르기보다 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며 사는 사람일 것이다.

나는 나의 이름처럼 살고 있는가? 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살고 있는가? 아니면 유명무실하게 살거나 그 이름을 욕되게 하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벌거벗고 붉은 모습을 띄고 있었던 첫 아담(אדם = ruddy)과 벌거벗기우고 붉은 피로 범벅이 된 마지막 아담(אדם = ruddy)은 그 이름과 모습이 비슷하게 보이지만 이 둘은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한 사람은 땅에서 난 존재였고 한 사람은 하늘에서 내려온 존재였다. 한 사람은 에덴에서 발견되었고 다른 한 사람은 갈보리에서 발견된다.

한 사람은 죄가 없었기 때문에 벌거벗고 있었고, 죄 때문에 무화과 잎으로 가리우고 나무 사이에 숨었으나 다른 한 사람은 죄없이 이 땅에 왔고 죄 때문에 벌거벗기우게 되었으며 나무 위에 피투성이가 된 채 달리게 되었다.

첫 아담의 신부였던 하와(חוּה = lifegiver)는 "생명을 주는 자"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지만 죽음의 통로가 되었고 마지막 아담의 신부인 우리는 그 마지막 아담이신 예수님의 죽음과 우리의 죽음을 통해 생명의 통로로 살고 있다. (고후 4:7-12)

나에게 화려하고 번듯한 이름은 없지만 예수님이 주신 그 생명의 통로로 살아갈 수 있고 은혜와 진리의 통로, 사랑과 믿음의 통로로 살아갈 수 있다면 좋겠다.

마지막 아담처럼 다 벗기우고 채찍 맞고 못박혀 죽는다고 해도 첫 신부의 이름(하와)처럼 생명을 주는 자로, 마지막 아담(예수님)처럼 마지막 신부를 불러 일으키는 자로 살다가 가고 싶다.

 2 Corinthians 4:7-12
7 우리가 이 보물을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그 능력의 탁월하심이 하나님께 있는 것이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님이라. 8 우리가 사면에서 고난을 당하여도 괴로워하지 아니하며, 당혹스런 일을 당하여도 절망하지 아니하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아니하며, 내던져져도 멸망하지 아니하며 10 항상 주 예수의 죽으심을 몸에 지니고 다님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11 살아 있는 우리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지는 것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의 죽을 육신에 나타나게 하려는 것이라. 12 그러므로 죽음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나 생명은 너희 안에서 역사하느니라.  7 We have this treasure in earthen vessels, that the excellence of the power may be of God and not of us. 8 We are hard pressed on every side, yet not crushed; we are perplexed, but not in despair; 9 persecuted, but not forsaken; struck down, but not destroyed-- 10 always carrying about in the body the dying of the Lord Jesus, that the life of Jesus also may be manifested in our body. 11 For we who live are always delivered to death for Jesus' sake, that the life of Jesus also may be manifested in our mortal flesh. 12 So then death is working in us, but life in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