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18. Friday, Genesis 36:31

 

2015. 12. 18. Friday

Genesis 36:31
Now these were the kings who reigned in the land of Edom before any king reigned over the children of Israel:

바로 앞절에서 세일 땅에 있는 7명의 호리족 족장들에 대해서 언급을 하다가 갑자기 에돔 땅을 다스리던 왕들에 대한 언급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후손들에게는 아직 왕이 있기도 전에 이미 에돔 땅에서는 왕들이 존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빨리 가고 아무리 느리게 가더라도 하나님의 영원 속에서는 전혀 차이가 없다.
차라리 느리게 가다라도 영원으로 이어지는 것이 빨리 가다가 영원히 사라지는 것보다 낫다.
하나님은 에서와 야곱이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형이 아우를 섬길 것이라는 하나님의 예언을 이미 받았다.

Genesis 25:23
And the LORD said to her: "Two nations are in your womb, Two peoples shall be separated from your body; One people shall be stronger than the other, And the older shall serve the younger."

만약 나에게도 이러한 하나님의 예언, 약속이 있다면 남이 빨리 가고 왕국을 건설하며 번창해 간다고 조급해 하거나 경쟁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 문제는 하나님이 크게 보이지 않고 그 분의 영원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과 피곤하게 부딪히고 씨름하며 순간적인 것들을 붙들고 연연해 하고 잠을 설치며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었을 때 에돔 땅에는 이미 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어쩌면 경제적으로도 막강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막강하고 뛰어나도 하나님이 끝이라고 하면 끝이다. 반대로 말하면, 아무리 형편없고 약해도 하나님이 끝이 아니라고 하시면 끝이 아닌 것이다.


헤롯은 에서의 후손으로 야곱의 후손들이 왕 없이 로마의 속국으로 있을 때 유대의 분봉왕이 된 인물이다. 그가 한동안 유대 땅을 다스리기는 했지만 그의 왕권은 영원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시작하신 당신의 왕국은 너무나 미약하고 눈에 보이는 영토나 백성이 없어 보였지만 결코 멸망치 않고 오늘날 까지 계속해서 그 통치를 확장해 가고 있다.

한 나라가 형성되려면 "땅"이 있고 "백성"이 있어야 한다. 사람은 있지만 땅이 없으면 나라를 이룰 수 없고 땅은 있지만 사람이 없어도 나라를 형성할 수 없다.


유대인들은 2천년 동안 나라없이 여기 저기를 떠돌며 살았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정착할 땅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917년 11월 2일 그 당시 영국 외무장관이었던 발포어의 이름으로 선포된 "발포어 선언(Balfour Declaration)"을 통해 영국은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땅에 유대인의 나라를 설립하는데 최선을 다해 도울 것을 약속했다.

"His Majesty's Government view with favour the establishment in Palestine of a national home for the Jewish people, and will use their best endeavours to facilitate the achievement of this object, it being clearly understood that nothing shall be done which may prejudice the civil and religious rights of existing non-Jewish communities in Palestine, or the rights and political status enjoyed by Jews in any other country".

물론 영국이 정치적인 이유와 경제적인 이권들 때문에 이 약속을 깨뜨리지만 결국 유대인들은 어렵게 자기 조상들의 땅에 이주를 시작했고 1948년 5월 14일, 유엔의 결의에 의해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로 다시 태어나게 된다.

우리는 땅도 있었고 백성도 있었지만 1905년 11월 17일, 을사년에 맺어진 "제 2차 한일협약"이라는 강제 조약으로 그 땅의 주인된 권리를 잃어 버리고 점차 일본의 식민지가 된다. 이처럼 땅도 있고 사람도 있지만 주권을 잃어 버리면 결국 나라를 잃어 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일본에게 땅을 빼앗기고 주권을 빼앗기고 나라를 잃었지만 민족의 정체성과 주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임시 망명정부가 만들어 졌다. 즉 당장 백성들이 없고 땅이 없었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몸을 땅으로 삼고 자기 자신을 국민으로 삼아 임시정부를 세운 것이다.


아브라함이 이 땅에 살 때에 나그네로 살았고 헤브론에 임시정부를 꾸리고 살았다. 이 임시정부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면서 하나님의 왕국으로 정식 출범을 한다.

Hebrews 11:9,10,16
9 By faith he dwelt in the land of promise as in a foreign country, dwelling in tents with Isaac and Jacob, the heirs with him of the same promise; 10 for he waited for the city which has foundations, whose builder and maker is God. 16 But now they desire a better, that is, a heavenly country. Therefore God is not ashamed to be called their God, for He has prepared a city for them.

그런데 하나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있다고 한 것처럼 내가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내가 예수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순종하게 된다면 내 안에서부터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고 그 하나님 나라는 나를 통해서 존재할 뿐 아니라 계속해서 무서운 기세로 확장된다. (누가 17:21, 마태 11:12)

Luke 17:21
"nor will they say, 'See here!' or 'See there!' For indeed,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Matthew 11:12
"And from the days of John the Baptist until now the kingdom of heaven suffers violence, and the violent take it by force.

그러므로 내가 내 몸을 그 왕국의 영토로 드리고 내 마음과 삶을 그 분의 주권 아래 드린다면 하나님의 왕국은 더 이상 임시정부가 아니며 당당한 주권을 가진 나라로 만왕의 왕을 모시고 그 통치를 확장해 갈 것이다.


호리의 족장들이 어디 있는가? 에돔의 왕들이 어디 있는가? 이들 후에 등장한 이스라엘의 왕들은 어디에 있는가? 다윗도 솔로몬도 다 가고 없다. 하지만 만왕의 왕이신 그 분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지만 영원한 왕으로 통치하고 계신다.


모든 것은 잠깐이다. 잠깐 후면 아침 이슬처럼, 아침 안개처럼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너무 집착하지도 말고 연연해 하지도 말자. 영원이 확실하면 순간에 매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원이 불확실하면 순간에 집착하고 거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대학 입학이 한 때는 내 인생의 전부였고 직장이, 결혼이 내 인생의 전부였다면 지금 내 인생에 있어서 전부처럼 다가오는 것은 무엇일까?

9살짜리 우리 큰 아들 노아에게 있어서는 아이패드 마인드 크레프트(mind crafts) 게임이 지금 전부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이가 조금 지나면 여자 친구나 다른 것이 그의 전부로 다가올 것이다.

진짜로 예수님이 나의 전부(everything)이며 나의 영원(everlasting)이 맞나?

그렇다면 베드로처럼 적어도 그 순간은 배와 그물과 잡은 물고기와 자기 부인까지도 내려 놓고 예수님을 따를 것이다. 정말 그렇다면 바울처럼 모든 유익하던 것조차 배설물로 여기고 전부이며 영원하신 예수님을 찾아, 그 분을 따라, 목숨까지 내어 놓고 기꺼이 떠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보장되지 않아 보이고 예측할 수 없어 보이며 불확실해 보이는 믿음의 삶을 살기보다 그 부자 청년 관원처럼 보장된 자리와 소유, 그리고 예측 가능하고 확실한 반복적인 종교 생활을 향해 발걸음을 옮길 것이다.

나는 과연 보장되지 않아 보이고 예측할 수도 없으며 불확실해 보이는 이 길을 예수님 한 분만을 신뢰하며 떠날 수 있을까?

그러므로 나에게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모든 것이 분명하고 확실하며 보장되어 있다면 믿음이 필요없고 상식만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나의 삶은 상식으로 만족할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상식 너머에 있는 그 분을 이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나는 상식만으로 살기에는 너무 멀리 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