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2. 21. Sunday, Genesis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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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2. 21. Sunday

Genesis 38:7
And Er, Judah's first born, was evil in the eyes of Jehovah. And Jehovah killed him.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사는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는 악한 것이다. 즉 내 힘으로 살아가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쉬지 않고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목전에서는 사악한 것이다.

안식일에 산에서 나무하다가 돌에 맞아 죽은 사람은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안식일에도 일한 성실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안식일에 나무를 했다는 것 때문에 그 공동체 앞에서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한다. 

Numbers 15:32
And while the sons of Israel were in the wilderness they found a man gathering sticks on the sabbath day. 

이처럼 사람의 눈에 사악한 것과 하나님의 눈에 사악한 것은 다를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의 눈에는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사악한 것일 수 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기들의 땅을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갖고 온 행동은 사람의 눈에는 너무나 아름다왔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사악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겉을 보고 하나님은 마음 중심을 보기 때문이다.

골리앗도 실재였지만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더 실재였기에 사울과 그의 군사들이 골리앗 앞에서 그의 존재를 믿음으로(?) 반응한 것과 다윗이 하나님 잎에서 하나님을 믿음으로 반응한 것은 너무나 달랐다.

나는 언제까지 사람들의 눈 앞에서 그들의 눈치나 살피며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눈 앞에서 그를 으지함으로 담대히 살아갈 것인가?

유다(יהוּדה = praise)의 장남이 엘(ער = watchful)이었는데 그가 하나님의 눈 앞에서 사악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죽이셨다는 것은 충격적인 내용이다.

왜냐하면 유다라는 이름의 뚯이 "찬양"인데 그 "찬양"의 첫 열매가 하나님 앞에서 "사악함"이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유다(=찬양)가 어떻게 살았길래 그 첫 열매가 하나님 앞에서 사악한 것으로 드러난 것일까?

이 세상 속에서 "구별된 삶"이 없는 찬양과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가증하고 사악한 것이며 구역질 나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벨(의 삶)과 그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의 삶)과 그 제물은 받지 않으셨다고 했다.

Genesis 4:4-5
4 And Abel brought, he also, from the firstlings of his flocks, even from their fat. And Jehovah looked to Abel and to his offering. 5 And He did not look to Cain and to his offering. And Cain glowed greatly with anger, and his face fell.

즉 아무리 귀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많이 드린다고 해도 삶이 없는 제물로는 사람들을 속일 수는 있지만 하나님은 속일 수 없다. 


아마도 찬양의 첫 열매인 엘(Er)은 사람들의 눈 앞에서는 깨어 있는 파숫꾼처럼 훌륭하고 멋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이나 겉모습이 아니라 삶과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삶이 없는 입술만의 찬양이나 제사는 아무리 멋있게 포장되고 살찌고 기름진 것으로 드린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거짓되고 가증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Isaiah 1:13-15
13 Do not add to bringing vain sacrifice; its incense is an abomination to Me. I cannot endure the new moon and sabbath, the going to meeting, and the evil assembly. 14 My soul hates your new moons and your appointed feasts. They are a burden to Me. I am weary of bearing them . 15 And when you spread out your hands, I will hide My eyes from you. Yea, when you multiply prayer, I will not hear. Your hands are full of blood. 13 헛된 예물을 더이상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게 가증함이요, 새 달들과 안식일들과 집회들을 모으는 것도 내가 견딜 수 없으니, 심지어 엄숙한 모임까지도 악한 것이니라. 14 너희의 새 달들과 정한 명절들을 내 혼이 싫어하노라. 그것들은 내게 짐이요, 내가 지기에 피곤하노라. 15 너희가 너희 손을 내밀 때면 나는 너희에게서 내 눈을 가리우리라. 정녕, 너희가 기도를 많이 할 때에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너희 손은 피로 가득하도다. 16 너희는 씻고 스스로 깨끗케 하라. 내 눈 앞에서 너희의 악한 행실을 버리고 악을 행하는 것을 그치라. 17 선을 행하기를 배우고 공의를 찾으며, 압제당하는 자들을 구해 주고, 아비 없는 자를 판결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18 이제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주가 말하노니, 너희 죄들이 주홍 같을지라도 눈같이 희게 될 것이요, 진홍처럼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가롯 유다의 조작된 입맞춤이 그런 것이었으며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바친 엄청난 헌금이 그런 것이었다.

즉 가롯 유다는 깊은 친밀함의 표시인 입맞춤으로 예수님께 다가왔으나 사실은 그 입맞춤을 통해 예수님을 배신하고 그를 종교지도자들에게 팔아 넘긴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사랑과 헌신의 표시로 자신들의 땅을 팔아 사도들에게 갖고 온 것 같았으나 사실은 자신들의 이름을 드러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숨은 속셈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Acts 5:4
Remaining, did it not remain yours? And being sold, was it not in your authority? Why is it that this action was put into your heart? You did not lie to men, but to God!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숨기고 오는 속셈은 (그것이 뻴셈이든 덧셈이든 곱셈이든 나눗셈이든) 잘 보지 못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속셈을 알고 계시기에 거기에 속지 않으신다.
내가 상대방의 속셈을 모르면 그 속셈에 당하게 되고 나의 속셈이 상대방에게 발견되면 내가 당하게 된다.


에훗은 모압 왕 에글론을 죽일 속셈을 하고 칼을 만들었고 공물을 바치러 갈 때 그 칼을 오른쪽 허벅지에 숨기고 갔다.

하지만 오른 손이 불구인 그가 감히 그런 속셈을 갖고 왔으리라고는 꿈에도 상상치 못한 에그론 왕은 에훗의 말을 듣고 모든 신하를 그 앞에서 나가게 했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에훗의 칼에 찔려 비참하게 죽고 말았다.

상대방의 속셈을 모르면 이렇게 당한다. 하지만 예수님은 가롯 유다의 속셈을 알면서도 자신을 그 속셈에 내어 주신다. 왜냐하면 그 분께는 더 깊은 하늘의 속셈이 있었기 때문이다.


요셉은 형들의 곡식 자루에 은(돈)을 다시 집어 넣게 했고 베냐민의 자루에는 자신의 은잔을 숨기게 했다. 하지만 요셉의 형제들은 물론 이 지시를 받아 따르던 요셉의 하인들조차 요셉의 깊은 속셈을 몰랐다.

사탄은 하나님의 속셈을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자기가 승리한 줄 알고 자신의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다.

하나님에게 있어서는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의 속셈을 모르기 때문에 종종 실패와 죽음 앞에서 포기하고 스스로 끝내 버린다.

하지만 하나님이 끝내지 않으신 것은 결코 끝이 아니며 하나님이 끝내신 것은 이미 끝난 것이다.
하 나님은 결코 실패하지 않는 "사랑의 속셈"과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랑의 속셈"을 갖고 계시기에 아무리 실패하고 원수가 막아도 그것이 끝이 아니며, 아무리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지루하고 견디기 힘든 여정이라도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이미 끝내셨기에 그것은 이미 끝난 것이다.


(우리가 속셈 학원을 다닌다고 상대방의 숨은 속셈을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나누고 삶을 나누며 시간을 보내게 되면 비로소 상대방의 속셈을 알 수 있다.)


나는 하나님의 속셈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재정적으로 어렵고 원수같은 사람이 나타나 나를 힘들게 하고 죽이려 할 때 하나님의 깊은 속셈을 알기에 예수님처럼 나를 십자가에 내어 줄 수 있을까?

이스라엘 땅과 이 땅에 사는 유대인과 아랍인을 향한 하나님의 속셈은 무엇일까? 광야에서 죽어가던 이스마엘을 살리시고 축복하신 하나님의 깊은 속셈은 무엇일까?

이 깊은 하나님의 속셈을 모르는 사람들은 아브라함이 실수했고 하나님이 실수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실수를 들어서 원수같은 유대인과 아랍인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되게 하고 딩신의 영광을 드러내시며 당신의 왕국을 확장시키신다.

우리를 지금 이 이스라엘 땅에 부르신 하나님의 속셈은 무엇일까? 지금 이 땅에 JS 자매를 장기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속셈은 무엇일까? 그리고 올 여름에 갈멜산에서 열방부흥축제를 열게하시는 하나님의 속셈은 무엇일까?

내가 하나님의 깊은 속셈만 제대로 안다면 사람들의 속셈은 몰라도 상관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속셈은 죽음 앞에서 다 끝나기 때문이며, 반대로 하나님의 속셈은 그 죽음 앞에서 드러나고 펼쳐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