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2. 12. Friday, Genesis 3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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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 02. 12. Friday

Genesis 37:36
And the Midianites sold him into Egypt, to Potiphar, a eunuch of Pharaoh, the chief of the executioners.   

미디안(?) 사람들이 요셉을 이집트에 팔았고 내시(?)로서 사형집행 책임자인 보디발에게 팔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요셉의 형들로부터 요셉을 산 사람들은 이스마엘 상인들이었다. 그렇다면 미디안 상인들이 중간에 이스마엘 상인들로부터 요셉을 샀다는 말일까?

그럴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들이 이집트로 간 것이 너무나 분명한데, 왜 "이집트에(into Egypt)" 팔았다고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이집트"라는 말과 그 땅 안에 흥미로운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집트라는 히브리어 "미쯔라임(מִצְרָ֑יִם)"은 "마쪼르(מצור = a limit, besieged, fortified)"라는 말에서 왔으며 "한계" "포위된" "견고한" 등의 뜻이 있다.

즉 요셉이 팔려간 그 이집트라는 땅은 그 문자적인 의미로 보면 한 번 들어가면 죽기 전에는 나올 수 없는 철옹성 같은 땅이었고 탈출은 감히 꿈도 꿀수 없는 포위된 땅처럼 보인다.

그런데 만약 요셉이 그 이집트 땅에서 매일매일 탈출할 것만을 생각하고 그 기회를 엿보고 살았다면 그는 탈출을 꿈꾸며 시간을 낭비했거나 탈출을 시도하다가 잡혀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팔려간 이집트가 철옹성 같았기에 요셉은 탈출을 아예 포기하고 주인의 말을 잘 듣고 충성된 노예로 섬겼으며, 나중에는 억울한 죄수가 되어 소망없이 살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런데 그런 죽음의 땅 안에 요셉의 탈출을 도와 줄 보디발이 있었고 바로 왕이 있었다.

즉 이집트에 팔리기는 했지만 동시에 왕의 측근에 있던 보디발에게 팔렸기에 하나님의 감춰진 계획(소망)이 그 이집트 땅 안에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 나님은 요셉의 "탈출구"를 그가 갇힌 이집트 띵 안에 숨겨 놓으셨고 보디발 집에 감추어 두셨다. 즉 그 탈출구는 그가 도망함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망하지 않고 노예로 잘 섬기고 죄수로 잘 갇혀 있으면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통해 드러났다.

그러므로 그 탈출구를 밖에서 찾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이집트 안에 준비해 두셨고 요셉 안에 준비해 두셨기 때문이다.


요셉은 집 안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서 도망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으로부터는 도망했지만 그는 스스로 보디발의 집 밖으로 도망치거나 이집트 밖으로 도망치지 않았다.

만약 요셉이 도망을 시도했다면 그는 개죽음을 당했거나 그가 헤브론에 돌아감으로써 형들의 거짓이 폭로되고 집 안이 쑥대밭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곧잘 하나님의 탈출구는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철옹성 같은 곳에 나를 가두시고 내 안에서 답을 찾게 하시며 그 철옹성 안에서 탈출구를 찾게 하신다.


포도주가 떨어진 가나(Cana) 혼인집에서는 포도주를 구하러 하인들을 이웃집이나 가게로 급히 보냈어야 했다. 그러나 답은 그 집 안에 있었다.

제자들은 해가 지는 광야에서 사람들이 먹을 것을 스스로 찾도록 그들을 흩어 동네로 보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답인 오병이어는 그 사람들 안에 있었다.

바로 왕이 찾고 있었던 꿈 풀이와 그 해결에 대한 열쇠를 가진 사람은 바로 시위대장의 집 안에 있는 감옥에 있었다.

느부갓네살 왕이 꾼 꿈을 말해 주고 그것을 풀이할 사람은 멀리 있지 않았고 그 궁궐 안에 있었다. (가장 가까이서 그를 섬기는 다니엘이 그 사람이었다.)

갓난 아이 모세를 살리는 가장 안전한 길은 바로 왕을 피해서 도망하는 곳에 있지 않았고 바로 왕의 궁 안에 준비되어 있었다.


어제 아침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우리 공동체에 함께 살고 있는 한 분이 뜬금없이 지폐 두 장과 동전 몇 개를 싱크대 옆에 두시면서 가지라고 했다.

그리고 오후에 어떤 형제와 통화를 하면서 별 이유없이 그날 저녁에 만나기로 했다. 사실 그 전 날 저녁에 만났기 때문에 굳이 만나야 할 특별한 이유가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를 만나기 전, 다음 날 프랑스에 있는 임시 난민촌을 방문하기로 된 그에게 전에 누군가가 준 얼마 안되는 유로화를 가져 가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를 만나서 그에게 봉투를 건내자 그는 눈물을 흘리고 흐느끼면서 하늘을 향해 감사를 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그는 다음날 다른 친구 몇 명과 함께 프랑스 난민촌을 방문하는데 경비가 하나도 없었다고 나에게 말했다.

그 는 런던에 있는 자기 친구들이나 가족에게 도움을 구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은 "사무엘이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시면서, 사무엘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스스로 제사를 드림으로 화를 자초했던 사울 왕을 생각나게 해 주셨다고 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내가 가져갔던 액수가 그가 필요한 액수와 비슷하다고 했다. 답은 먼 곳에 있지 않았고 가까운 곳, 우리 안에 있었다. 

만 약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탈출에 성공해서 이집트를 벗어났다면 그는 복수로 불타는 삶을 살았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요셉이 술관원장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나 이집트를 벗어났다면 그는 결코 형들을 용서하지 못했을 것이고 이집트의 총리가 되지도 못했을 것이다.

갇힌 곳에 있어야 깊이 파고 내려갈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갇힌 풀무 같은 곳에서 하나님은 나를 불로 연단하시고 당신의 사람으로 빚어 가신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에 갇힘으로 모든 핍박으로부터 벗어났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었고 승진까지 하게 되었다.

다니엘은 사자굴에 갇힘으로 말미암아 주변에 있던 원수들의 참소로부터 자유케 되었고 하나님을 드러내게 되었다.


나는 갇힌 이집트를 벗어나려고만 하지 않는가? 나는 내가 갇힌 곳에서 주님이 내 안에서 일하시게 내어 드리고 주님이 나를 통해 드러나시도록 맡기고 있는가?


사람들은 갇히는 것을 싫어 하지만 갇혀 있는 침묵과 어둠의 시간이 없으면 내 삶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결코 깊어질 수 없고 겉돌고 얕은, 형식적이며 종교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이집트에서의 갇힌 시간을 원망과 분노로 낭비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침묵 가운데 하나님께 듣고 용서하고 잊어야 한다.

그것이 나를 참으로 자유케 하는 내면의 탈출구이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통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