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01. 17. Sunday, Genesis 3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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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01. 17. Sunday

Genesis 37:13
And Israel said to Joseph, "Are not your brothers feeding the flock in Shechem? Come, I will send you to them." So he said to him, "Here I am."

어떻게 이스라엘(야곱)은 17세 되는 소년을 3일이나 걸리는 길을 혼자 보낸 것일까? 그 당시 가나안 땅은 (강도나 야생 짐승으로부터) 혼자 여행하기에 위험하지 않았을까?

만약 이스라엘(야곱)이 적어도 하인 한 사람을 요셉과 함께 보냈다면 형들이 요셉을 죽이려고 했거나 노예로 파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혼자 가는 것과 함께 가는 것은 전혀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


예수님은 언제나 제자들과 많은 무리들과 함께 다니셨다. 그랬기 때문에 그 무리들로 인해서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고 체포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종종 무리들을 떠나서 혼자 있는 시간을 가지셨다.

이처럼 여정을 함께 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하다. 하지만 혼자 가야할 때는 혼자 가야 한다. 야곱도 아버지 집을 떠나 밧단아람으로 갈 때 혼자 갔고 얍복강가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 할 때도 혼자였다.

모세가 개인 텐트를 갖고 진영 밖으로 나가서 하나님과 만날 때 여호수아가 함께 따라 가기는 했지만 텐트 안으로 들어갈 때 여호수아는 밖에 있어야 했기에 모세는 혼자였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짙은 어둠 속으로 들어갈 때 그는 혈혈단신 혼자였다.
대제사장이 일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갈 때는 혼자 들어가야 했고 자칫 잘못 행동하거나 다른 소리를 내면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비록 함께 한다는 것이 놀랍고 혼자서 할 수 없는 것을 쉽게 처리할 수도 있지만 이처럼 반드시 혼자가 되어야만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있다.

이처럼 정말로 혼자가 되려면 포기하고 버려야 될 것이 많고 어려움과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즉 공격 당하기 쉬운 상태와 상황 속에 (vulnerable) 나를 두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정되고 보장되어 보이는 삶 속에 갇힌 채 새로운 세계 속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다른 이를 내 삶 속에 받아들이지도 못하며 쳇바퀴 안에서 다람쥐처럼 뺑뺑이 돌며 살아갈 것이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수가(세겜)성에 가셨을 때 그는 피곤하고 지친 몸으로 혼자 우물가에 앉아 계셨다. 만약 그 때 제자들이 그와 함께 있었다면 그 여인과의 대화나 만남이 그렇게 진행될 수 없었을 것이다.

제자들은 먹을 것을 사기 위해 예수님을 혼자 두고 세겜성으로 들어갔고 그 여인은 마실 물을 길으려고 아무도 오지 않는 뜨거운 한 낮에 혼자 우물로 왔다가 홀로 계신 예수님을 만났다.

만약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이 그 전날 저녁에 물고기를 좀 잡았다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시간과 배를 내어 드렸을까?

그들이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채 홀로 남겨지게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과 자신들을 위한 시간도 공간도, 마음의 여유도 있었던 것이 아닐까?


세례 요한은 아무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 홀로 있었기 때문에 위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었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살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왕궁이나 성전의 형식이나 규칙, 벽이나 경비가 없는 광야로 아무나 나와서 회개하고 세례를 받을 수 있었다.

사람을 죽이고 왕궁을 도망치듯 떠난 모세도 광야에서 장인의 양을 치는 홀로된 시간이 있었고 다윗도 자기 가족들에게 거절받고 광야에서 아버지의 양을 치는 홀로된 시간이 있었다.

이렇게 홀로된 시간이 없으면 결국 함께 하는 사람들의 소리나 상황들에 둘러싸인 채 위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개척자로서의 모험적인 삶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모세처럼 계속 왕궁에 살았다면 바로 왕의 명령과 권위 아래서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다가 엄청난 권력을 가진 바로 왕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바로 보내어 줄 수는 있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고 바로 왕 앞에 신과 같이 되어 수 많은 기적을 행하고 유월절 어린 양의 예언적인 길을 이 땅에 만들 수는 없었을 것이다. (출 7:1)

Exodus 7:1
So the LORD said to Moses: "See, I have made you as God to Pharaoh, and Aaron your brother shall be your prophet.

만약 제사장 스가랴의 아들인 세례 요한이 광야로 가지 않고 성전 제도(system) 아래 머물렀다면 그는 대제사장의 명령과 권위 아래서 장래가 보장되어 있었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제사장이 되어 행복하게 살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은 모든 것이 보장되고 보호된 왕궁과 성전을 떠나 벽도 없고 지붕도 없는 광야에서 아무 것도 보장된 것은 없지만 모든 가능성이 열려진 개척자(pioneer)의 삶을 시작한다.

나는 벽과 지붕으로 잘 보호된 곳에서 보장된 삶을 살아갈 것인가? 아니면 광야 같은 곳에서 보호도 없고 보장도 없으며 혼자지만 개척자의 삶을 살아갈 것인가?

야곱(이스라엘)은 요셉을 세겜에 있는 그의 형제들에게로 보냈으나 결과적으로 요셉은 세겜이 아닌 이집트에서 발견된다. 즉 육신의 아버지는 요셉을 세겜으로 보냈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그를 이집트로 보내신다.

야곱은 요셉이 형들의 기쁜 소식을 갖고 오리라고 기대하고 요셉을 보냈으나 요셉은 오지 않고 오히려 형들이 요셉의 피묻고 찢어진 옷과 함께 슬픈 소식을 갖고 그에게 나타났다.

Genesis 37:32
Then they sent the tunic of many colors, and they brought it to their father and said, "We have found this. Do you know whether it is your son's tunic or not?"

야곱은 기근 중에 이집트에 양식이 있다는 기쁜 소식을 듣고 요셉의 형들을 이집트로 보내지만 그들은 양식을 갖고는 왔지만 동시에 베냐민을 데려가야 한다는 나쁜 소식을 갖고 왔다.

이처럼 우리는 종종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정반대의 결과를 접할 때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궁극적인 결론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이 믿음의 여정을 계속한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 (롬 8:28)
 

어제는 특별히 이러한 생각과 고민을 많이 했다. 개척자로 사는 것에 대한 도전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40대의 대학교 후배가 암이 뼈로 전이 되어 하나님의 기적이 없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소식을 어제 받았다.

영국 배우자 비자를 신청했던 한 자매로부터 그 비자가 거절되었다는 소식도 어제 들었다.

3일 동안 에스더처럼 금식하고 왕궁에 들어가라는 마음을 받고 금식 후에 비자 서류를 보냈는데 기각(refusal) 편지를 받은 것이다.

나는 금식하는 동안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비록 내가 기대한 것처럼 결과가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어제 한동안 충격은 있었지만 오늘 아침에 주시는 말씀을 통해 나의 마음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을 다시 추스린다.


이스라엘(야곱)이 요셉을 보내면서 그의 형들이 분명히 세겜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그를 세겜에 보냈다. 즉 그들이 집을 떠나기 전에 아버지 야곱과 형들이 세웠던 일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요셉이 세겜에 도착할 즈음에는 확실이 그들은 세겜에 있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처럼 아버지에 대한 궁극적인 신뢰가 없으면, 아버지 말씀대로 순종해서 세겜에 갔으나 형들이 없다는 것을 발견한 요셉은 혼란에 빠지거나 마치 아버지에게 속은 것 같은 기분에 화도 나게 되며 불신도 생길 수 있었을 것이다.

이처럼 어떤 사람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상황과 여건에 따라 계획이 바뀌게 되거나 말한대로 그것이 지켜지지 않거나 결과가 달라지게 되면 화가 나고 불신이 생기게 되어 결국은 그로부터 돌아서게 된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따라 순종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분이 말씀한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그 분이 말씀을 바꾸게 된다면 황당할 것이고 불평과 불신으로 돌아서게 될 수도 있다.

요나 선지자는 40일 뒤에 니느웨 성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무너지고 멸망할 것이라는 하나님의 메세지를 목숨을 걸고 3일 동안 전한다.

Jonah 3:4
And Jonah began to enter the city on the first day's walk. Then he cried out and said, "Yet forty days, and Nineveh shall be overthrown!"

그런데 니느웨 성은 무너지거나 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백성들이 회개하는 일이 일어났다. 즉 하나님은 당신이 요나에게 하신 말씀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그랬기 때문에 요나는 결국 거짓 선지자가 되었고 하나님께 엄청나게 화가 났으며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고 했다.

Jonah 4:9
Then God said to Jonah, "Is it right for you to be angry about the plant?" And he said, "It is right for me to be angry, even to death!"

하나님의 마음은 결코 변하지 않았다. 그는 니느웨 사람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원했기 때문에 요나를 원수의 나라에 보냈고 요나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의 마음을 알기 원했기 때문에 그를 원수의 나라 니느웨에 보낸 것이다.

Jonah 4:11
"And should I not pity Nineveh, that great city, in which are more than one hundred and twenty thousand persons who cannot discern between their right hand and their left--and also much livestock?"


사람이 세운 일정과 계획, 그리고 약속은 주변 상황이나 내면의 변화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은 결코 변치 않고 상황의 변화나 우리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목적대로 이루어 질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미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다 이루셨기 때문이다. (요 19:30)

"It's finished!"

이미 그 분이 다 마치신 것을 믿고 그를 신뢰한다면 모든 것을 그에게 맡기고 비로소 쉴 수 있다.

아직 이 다음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하나씩 듣고 그 분의 마음을 따라 순종하며 풀어가자!

모든 것이 이해(understand)가 되면 더 이상 믿음이 필요없다. 하지만 이해가 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신뢰하기에 오늘도 그에게 듣고 그를 따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