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29. Tuesday, Genesis 3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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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29. Tuesday

Genesis 36:40
And these were the names of the chiefs of Esau, according to their families and their places, by their names: Chief Timnah, Chief Alvah, Chief Jetheth,

창세기 36장의 족보는 에서의 아들들과 그들로 구성된 에돔 족의 족장들의 이름들을 나열하면서 시작한다. (창 36:19)

Genesis 36:19
These were the sons of Esau, who is Edom, and these were their chiefs.

그리고 뒤이어 바로 에서가 이주하기 전부터 그 땅에 살고 있었던 호리 족, 즉 세일의 아들들과 족장들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창 36:20)

Genesis 36:20
These were the sons of Seir the Horite who inhabited the land: Lotan, Shobal, Zibeon, Anah,


그러다가 족장들로 구성되어 있던 그 에돔 땅에 왕들이 나타나 통치하게 되었으며 첫째 왕 벨라(בּלע = glup, destruction)부터 마지막 왕 하달(הדר = magnificence, splendor)까지 8명의 왕들의 이름이 나열되고 있다. (창 36:31)

Genesis 36:31
Now these were the kings who reigned in the land of Edom before any king reigned over the children of Israel:

이 왕국은 8명의 왕들의 통치 후에 끝났다. 아무리 그 나라가 막강하고 위대해도 하나님 나라 외에 영원한 왕국이란 이 땅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에돔 왕국의 마지막 왕의 이름과 그 부인의 배경이 기록된 후, 창세기 36:40절에서 다시 에서의 족장들의 이름이 나열되고 있다.

이것은 마치 "족장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갔다가 다시 "족장 시대"로 되돌아 간 것 같은 그림을 보여 주고 있다.

즉 이것은 세일의 후손인 호리 족의 왕정 시대가 끝나면서 가나안에서 이주해 온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이 다스리는 족장 시대가 열린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은 가족으로 돌아간다. 아무리 위대한 왕이 통치하고 엄청난 땅을 갖고 있다고 해도 결국은 가장 기본 단위인 가족으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조직이나 단체가 아니라 가족을 찾고 가족을 세워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통해 가정을 만드신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계시록 마지막에 신랑되신 어린양 예수님이 당신의 신부를 맞이 하는 가족의 그림으로 마무리 되고 있다.

하나님은 중국의 진시황이 만든 병마용처럼 진흙으로 수 많은 군인들을 만들어 엄청난 왕국을 세운 것이 아니라 단지 아담과 하와를 통해 가정을 만드셨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다. 하나님 나라는 거대한 군사조직이나 엄청난 재정을 통해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아담과 하와를 통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 당신의 신부를 다시 찾으신 마지막 아담이시며 신랑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가족 관계를 통해 확장되고 세워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웨일즈에 왔을 때 네이션스라는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하셨고 그 안에서 많은 그리스도의 새로운 가족들을 만나게 하셨다. 그리고 지금은 더포지 대장간이라는 새로운 가족을 이루며 그리스도의 몸과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더 깊은 관계와 더 넓은 그림을 보게 하신다.


에돔 땅의 마지막 왕이었던 하달은 특출하고 영화롭다는 대단한 이름을 갖고 있었지만 그가 다스리던 도시는 "비명"이라는 뜻을 가진 "바우( פּעוּ =screeming)"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

이것은 아마도 그 도시와 시민들의 상태나 상황은 통치자가 가진 이름이나 그의 놀라운 명성과는 정반대로 비명을 지르며 살아야 하는 억압과 고통이 있었음을 말해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랬기 때문에 하달이라는 놀라운 왕의 이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통치가 만들어 낸 것은 백성들의 신음과 비명이었기 때문에 이 왕국은 계속되지 못하고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는지 모른다. (이름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자세와 삶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왕정 시대의 몰락은 에돔 땅의 첫째 왕이었던 벨라(בּלע = glup, destruction)로 부터 이미 예상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는 왕국의 기초를 놓은 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기초가 멸망과 삼킴이었다. 이것은 마치 가자지구에서 시작된 무장 테러 집단인 하마스(Hamas)의 기초와 비슷하다.

하마스는 (유대인들을)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래서 죽이고 멸망시키기 위해서 어린 아이 때부터 살인과 파괴를 쇄뇌 시킨다.

이렇게 이들의 삶과 단체의 기초가 하나님을 대항하고 그의 영원한 목적을 거스리며 살인과 파괴에 놓여져 있다면 지금 아무리 기세를 떨치고 있다고 해도 결국은 스스로 멸망하고 사라질 수밖에 없다.

바벨탑을 쌓고 도시를 만들었던 사람들의 기초는 하나님을 대항하는 교만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이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해서 흩어지게 하셨다.

교만은 잠시 동안 우리를 하나되게 하지만 결국에는 서로 흩어지게 하고 멸망으로 치닫게 한다. 하지만 겸손은 우리를 하나되게 하고 서로를 세워주며 영원한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가족을 세우게 한다.


에서의 족장들의 이름은 그들이 속한 가족들과 장소들에 근거해서 나열되고 있다.

즉 개인의 이름이나 족장이라는 타이틀은 있지만 그가 내면적으로 뿌리를 내릴 가족(משׁפּחה =
a family, a class, a species)이나 실제적으로 뿌리를 내릴 땅(מקום = a standing, a spot, a locality, place, room, space)이 없다면 그 이름은 아무 것도 아니다.

에서는 가나안 땅에 거할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동생 야곱이 가나안에 마음껏 정착할 수 있도록 자기 가족들을 이끌고 세일 산지로 가서 거기에 정착을 한다.

아마도 에서의 내면에는 야곱을 품고 받아 줄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이 있었기 때문에 야곱이 가나안에 와서 정착을 하게 될 때 가족들을 데리고 세일 산지로 떠난 것이 아닐까?

아무리 가족이 있어도 발 붙일 땅이 없다면 나그네이며 이방인이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발붙일 곳 없이 그렇게 이방인과 나그네로 살았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 안에 뿌리 내릴 땅을 갖고 있었고 믿음으로 그 뿌리를 깊이 내리고 살았다. (히 11:13,16)

Hebrews 11:13,16
These all died in faith, not having received the promises, but having seen them afar off were assured of them, embraced them and confessed that they were strangers and pilgrims on the earth. 16 But now they desire a better, that is, a heavenly country. Therefore God is not ashamed to be called their God, for He has prepared a city for them.


나에게도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발견한 그 땅이 있다.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그 땅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반석에 뿌리 내리기 보다 다른 땅을 찾아 다닌다.

왜냐하면 이 반석에 뿌리 내리기 위해서는 믿음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상식과 인간적인 논리로 뿌리를 내리려고 하기 때문에 단단한 반석 대신 쉽게 계산이 나오고 눈에 보이는 부드럽고 연한 땅을 찾아 다닌다.

그런데 신비로운 것은 믿음으로 반석에 뿌리를 내리려고 하면 그 반석에 이미 갈라진 틈이 있고 그 반석 안에 엄청난 생수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이 반석에 뿌리를 내리게 되면 주변 상황에 쉽게 흔들리지 않고 쉽게 뿌리 뽑히지도 않는다.

그래서 오늘도 마리아처럼 그 분의 발치에 앉아 그의 심장 소리를 들으며 그 영원한 반석에 내 삶의 뿌리를 내린다.